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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운동 위기 속에 되살아오는 전노협

진보평론  제36호
백승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창우,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 전노협은 왜 청산되었는가󰡕, 후마니타스, 2007.



책을 읽다보면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왠지 기대감을 주는, 아니 그보다 앞서서 무언가 먼저 끌려드는 책들이 있다. 김창우 선생의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주장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하고 명쾌하다. 전노협의 청산, 그로부터 바로 현재의 노동자운동의 위기가 잉태되었고,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가는 과정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였다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위기와 분당 뿐 아니라 그보다 앞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위기, 그리고 그와 연관되어 진행된 민중연대의 사실상 무력화라는 서로 연결된 위기의 구조 속에서 새삼 이 책이 던지는 문제제기는 매우 뼈아프게 느껴진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로 되돌아 가보지 않고서 현재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는 점, 그것이 이 책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노동자운동 위기의 와중에서 많이 거론되었던 주제 중 하나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였다. 노동자운동이 협소한 영역에 고립되지 않고, 사회의 변혁을 주도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하는가를 강조한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한 부분 중 하나는 이 용어를 정작 만들어낸 해외의 이론가/운동가들의 준거 대상 중 하나가 한국사회의 노동자운동이었다는 점이다. 그럼 한국 사회가 던진 화두가 외부를 돌아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서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에게 채찍질 하고 있는 셈인데, 거기서 바로 이 책의 질문은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이 노동자운동은 바로 출발점에서 우리가 시작한 바로 그 운동인가?” “그것이 동일한 것의 좀 더 발전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그럼 왜 아닌가? 전노협의 핵심적 지향은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변혁지향성’이었다. 그 핵심적 정신은 민주노총에 올바로 계승되었고, 지금 우리의 노동자운동은 이를 전노협 시절보다 훨씬 더 발전시키고 있는가?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이 이유를 부당한 전노협의 청산과정에서 찾고자 한다. 전노협은 민주노총으로 발전적으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해체되고, 그 자리에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이 등장한 것이다. 전노협 청산에 앞선 산별노조 건설 논쟁에서 지역산별에서 전국산별로 가는 대신 전국 산별 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흐름이 형성된 데서(좌우파를 불문하고), 그리고 그에 앞서서는 전노대(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를 단순한 공동사업 추진체가 아니라 상급 조직으로 인정한 전노협 35차 중앙위원회 결정에서(1993년 10월 15일), 다시 그에 앞서서는 ILO공대위 대신 전노대를 결성한 1993년 초의 결정에서 이미 그 청산으로 나아가는 싹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아래로부터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운동이 사라지고 점차 위로부터의 조직화를 통해 운동의 협상력을 키워가는 운동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 전노협의 시기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핵심시기였는가? 여전히 쟁점이 남을 이 주제에 관련해, 이 책은 적어도 세 가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전노협의 강점으로 남아있던 것이 그 이후 어떻게 사라졌고, 그것이 현재적 문제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쟁점들이다.
첫째로 전노협의 청산은 투쟁주체로서의 조합원 형성의 강점을 잃게 만들었다. 이는 단지 투쟁적인 조합원들의 수가 줄었다는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훨씬 더 심층적 중요성을 지니는 문제를 보여주는데, 전노협의 강점은 투쟁 속에서 조합원이 형성되는 과정이 그 자체로 학습과 민주적 조직화를 결합하는 과정이었다는데 있었다. 학습화와 조직화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 과정이었고, 민주노조운동에 참여하는 노동자 자신이 이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강점이 전노협의 시기에는 상황적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나마’ 주어져 있었다.
둘째, 전노협의 청산은 지노협으로 대표되는 지역 기반 노동운동의 전통을 붕괴시켰다. 울노협 조직화의 실패, 마창노련으로 대표되는 전노협의 해소, 민주노총 지역본부 건설 이후 지노협의 해체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 노동자운동의 역사가 보여준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의 두 번째 핵심적 유산인 지역기반의 노동자운동의 소실을 초래했고, 그리고 그만큼 연대의 정신도 사라졌다. 현재 그것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매우 강조되고 있음에도, 그 성과는 처음 전노협 시절에 훨씬 미달하고 있다.
셋째, 전노협이 전노대를 거쳐 민주노총으로 가는 과정에서 전노협 시절에 포함되어 있던 노동운동단체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좁은 의미의 노사관계의 틀에 의해 규정되는 ‘노동운동’의 외양에 더 가깝게 가도록 만든 하나의 요인이었다. 또한 노동자 운동의 주체 문제와 관련해서 노동자운동이 스스로 지속적으로 변신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오히려 외부의 분열된 정파적 구도가 노동자운동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게 해 노동자운동이 재분열 되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해방적 주체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조합원, 삶의 장소로부터 연대의 틀을 형성해 내지 못하는 노동운동, 그리고 운동의 ‘정치적’ 전망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노동운동이라는 한계는 이처럼, 아직 전면적으로 발전은 하지 못했더라도 매우 긍정적 함의를 지닌 요소들이 이후 전노협 청산 과정에서 소실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조직적 경험의 단절은 강령과 운동 노선의 단절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고,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의 구호를 대체하는 어떤 변혁적 구호도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비판의 현재의 함의는 무엇일까?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는 전노협 청산의 문제에서 대부분 기인하는 것일까? 이 책이 줄 수 있는 숙고의 지점과, 이 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해 보자. 이 책이 되살려내는 전노협은 여전히 노동자운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그 ‘형식’을 제공한다. 대중적 토대를 갖지 못하면, 지역적 기반을 형성해 내지 못하면, 변혁적 지향을 갖지 못하면, 현재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그것이 전노협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럼 여기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구조에 어떤 변화가 생겼고, 노동자들의 구성과 내적 분할에 어떤 변화가 발생한 것일까. 이제 누구를 어떻게 조직화해야 하는가. 지역적 기반의 복원은 그 때와 지금이 동일한 것일까. 변혁지향성은 지금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 전노협 출현의 출발점인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그 ‘1987년 정세’에 대한 자유주의적 포섭은 진행되었고, 그 균열 또한 상당히 진행되었다. 민주노조 건설이 쟁점이던 그 시기로부터―물론 아직도 그 민주노조 건설 자체조차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훨씬 더 포괄적인 쟁점 하에 놓여 있는 현재 정세에서, 위기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민중연대까지 포괄하여 훨씬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다. 기원을 되돌아보는 비판은, 현재의 구체적 정세의 쟁점과 연결될 때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이 정치의 위기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 책은 1990년의 노운협의 분열과 1993년의 전노대의 노운협 배제에서 어찌 보면 과도한 위기의 조짐을 찾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순서가 어그러진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에서 위기의 다른 일단을 찾고 있다. 물론 이 일들이 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조짐들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위에서 제기한 ‘내용들’을 충분히 포괄할 수 있는 질문과 답변들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직면한 시대와 정세의 정확한 분석과 그를 바탕으로 한 변혁적 사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전망은 노동자운동이 역사적으로 한정된 좁은 틀의 ‘노동운동’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훨씬 더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변신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일 것이다. 전노협의 역사는 이와 관련해서 분명하게 제기하는 질문만큼이나, 넘어서야할 한계,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전노협 정신의 핵심, 그것은 ‘노동해방’인데, 이제 그 노동해방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008-06-20 16: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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