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의 유한(有閑) 계급론

송태수󰋯한국노동교육원


“현대 산업체제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사유재산제도 아래에서는
그 어떤 암투와 불안도 피할 수 없다.
이 비천한 형태의 제도가 존속되는 한,
불만은 계속될 것이며,
이로부터 그 어떤 평화도 기대할 수 없다.”
(베블렌; Hunt, 1979 재인용)


1. 들어가는 말

최근 아파트 가격의 심한 요변 속에서 이 땅의 세대주들은 엄청나게 고조된 불안감과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계속해서 집값이 오르면 내 평생 내 집 마련은 가능한가? 평생 여기저기 셋집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극심한 불안감을 넘어 공포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같다. 직장인으로 평생 일해서도 모으기 불가능한 기십 억원을 ‘강남’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어 최근 한 두 해 사이에 벌었다는 모씨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야말로 일할 맛이 안 나는 사회다. 우리사회에서 일만 해서 정년 후 먹고 살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베블렌의 표현을 빌면―‘제작본능(workmanship)’을 제압하고―‘약탈본능(predatory instincts)’이 지배하는 금력과시(金力誇示)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한한 금력축적 경쟁에서 투기꾼의 능력―대중매체에서는 ‘투자능력’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포장된다―을 배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변덕 사회에서 투기꾼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떤 평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베블렌의 말대로 상대적 빈곤ㆍ풍요감이 우리 행위의 주요한 동인이라 할 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불안과 불만을 없애고 평정 속에서 살기는 정말 어려워 보인다.
베블렌의 표현대로 사유재산제도가 유지되는 한, 사람들은 이래저래 잔뜩 불만을 가진 채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금력과시 사회에서 그 불안과 불만은 더욱 심해진다.

2. 관례(慣例)에서 벗어난 이단아

3. ‘베블렌의 미국’과 사상적 배경

4.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5. 유한계급과 보수주의, 그 사회적 의미

6. 글을 나가며

베블렌은 개혁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주위의 적대적 세계 속에서도 정치적인 면책권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 갈브레이스의 주장이다.

“프롤레타리아나 억압받는 이들, 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그의 가슴은 뛰지 않았다. 그는 가슴에 증오를 품은 사람이긴 했지만 혁명가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갈브레이스).

그가 품었던 증오의 기원을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변경지대에서 경험했던 가혹한 생활에서 찾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야말로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을 ‘천박한 출생의 한갓 머리 좋은 이단자의 복수’ 정도로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긴 보수주의의 그에 대한 복수일 수 있다.
󰡔유한계급론󰡕은 정확하게 당시 미국사회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베블렌은 󰡔유한계급론󰡕을 통해서 당시 미국사회에 ‘경고 신호’를 주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번창은 동시에 극심한 불안정을 의미했다. 1912년 좀바르트는 󰡔사치와 자본주의󰡕를 내놓았다. 20세기 초 극도로 심화된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그에 따른 자본주의체제의 불안정성의 문제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학자 모두의 화두였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의 문제를 내포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는 결국 케인스(J. M. Keynes)의 ‘유효수요’라는 개념을 통해서 국가가 ‘재분배’에 개입함으로써 ‘수정’되어져야 하는 것으로 판명 났다.
󰡔유한계급론󰡕은 ‘베블렌학파(Veblenesqu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른바 정통파 경제학자들은 모형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 사이에도 현실 경제는 이들을 기다리지 않고 모순을 축적해가고 위기는 심화해간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 곳곳에서 경고 신호가 깜박이고 있다. 보수주의는 정통경제학자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고대 그리스의 강도인 프로크루테스는 잡은 사람을 쇠침대에 눞혀, 키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키 작은 사람은 잡아 늘렸다고 한다]’ 뒤에 몸을 감추고 고아함과 권위를 지키려하고 있다. ‘베블렌학파’의 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이다.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은 시기적 제한성을 갖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금력과시 사회에 대한 분석은 분명한 일반성을 갖는다. 이른바 ‘가공자본’의 지배력이 무한히 커지는 현실은 이를 더욱 실감케 한다.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의 문제를 ‘슬픈 냉소’로 비웃던 그의 죽음 직후 전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