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교수는 대단히 부지런한 정치학자다. 그는 벌써 20년 가까이 많은 논문과 평론과 칼럼을 쉼 없이 발표하고 있다. 물론 그 대부분은 한국 정치에 관한 것이다. 손호철 교수는 한국 정치에 관한 탁월한 분석가이자 근면한 기록자이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치고 그의 기록과 분석에 도움을 입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2006년 5월에 발간된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해방 60년을 맞아 ‘한국 정치의 다양한 쟁점들’을 다룬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손 교수는 11년 전에 출판한 󰡔해방 50년의 한국 정치󰡕(새길, 1995)와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에 걸쳐 다양한 정치적 쟁점들을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특유의 흥미로운 글솜씨로 설명하고 있다.
두 책의 속날개에는 손 교수의 상반신 사진이 실려 있는데,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으로 변한 그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우선 나잇살 때문인지 몸이 많이 불었다는 것이 눈에 띄고, 사진은 칼라로 밝게 바뀌었으나 정작 얼굴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는 것이 눈에 띈다.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도 한국 정치에는 여전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2.

잘 알다시피 한국 정치는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어렵게 발전해왔다. 그 구비마다 수많은 민중의 피와 땀이 스며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손호철 교수는 무엇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내용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예컨대 󰡔해방 50년의 한국 정치󰡕에서 반독재 민주화의 역사적 전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에서는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규정했던 가장 중대한 역사적 과제였다. 손호철 교수는 2002년 대선을 통해 이 과제가 거의 해결되었다고 본다. “정치적 수준에서 박정희 시대, 개발연대가 종식하고 진정한 자유주의세력이 정치적으로 한국 정치에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선거였다”(286쪽)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중도우파적인 개혁적 자유주의, 개혁적 신자유주의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 내지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고, 수구적 보수세력의 힘이 점점 약화되며, 사회민주주의적인 진보세력(중도좌파)이 서서히 힘을 얻어가는 형국을 띠는 이념적 3정립 구도가 발전해 갈 것이다”(297쪽)라고 전망한다.
이런 평가와 전망에 비추어 보자면,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한국 정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면서도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한국 정치의 ‘퇴행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퇴행’이란 이를테면 1987년 이전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손호철 교수는 이런 식의 퇴행론은 분명히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는 반독재 민주화가 아직도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60년의 한국현대사는 대한민국이 국시로 삼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 온 ‘자유민주주의의 비극’(아니 희극?)의 역사”(355쪽)라는 것이다.
손호철 교수는 이처럼 반독재 민주화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것이야말로 구조적인 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결론짓는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계속되는 한 박정희 향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민주개혁에 대한 지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의 비극”(356쪽)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민주개혁세력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것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 점에서 손 교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한다. 두 정부는 민주화의 심화를 위해서도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했으나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적극 강화함으로써 민주화마저도 새로운 위협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강화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국 정치의 전개와 현황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손호철 교수는 이른바 ‘87년 체제’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지금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97년 체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그의 설명은 박정희 시대에 관한 설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반공독재체제로 성립한 ‘48년 체제’가 박정희의 쿠데타를 통해 ‘61년 체제’로 강화되었다고 본다. 이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와 경제적으로는 국가주도경제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런데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가 타파되었고, 1997년의 IMF 경제관리로 국가주도경제가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이렇게 해서 성립한 ‘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와 민주화의 불안한 결합이 특징이다.
해방 60년을 지나며 한국 정치가 반공주의나 지역주의보다 신자유주의의 위협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큰 발전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어도 냉전적 수구세력의 맹목적 폭력이 크게 약화된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응은 이런 전제 위에서 생태복지사회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천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손 교수의 󰡔제국󰡕에 대한 비판도 흥미롭다. 손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대한 󰡔제국󰡕의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손 교수는 󰡔제국󰡕의 이론적 오류와 실천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와 함께 󰡔제국󰡕에 대한 일부의 ‘열광’은 지적 식민화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음도 밝히고 있다.


3.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한국 정치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여기서 나아가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과제를 살펴보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점에서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새삼스럽게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른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좌파적 설명의 한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첫째, 좌파적 설명에서는 정치의 주체로서 노동운동에 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그 위기에 관한 설명이 사실상 없다. 노동운동의 역할과 과제에 관한 손 교수의 깊은 설명을 기대한다. 둘째, 좌파적 설명은 무엇보다 ‘유물론적 설명’이어야 하며, 이 점에서 고도성장에 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특히 올바른 전망을 위해서는 고도성장이라는 거대한 물질적 변화의 정치적 결과와 효과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변화에 대한 설명이 사실상 없다.
끝으로 참고문헌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이 서평을 맺고자 한다. 손호철 교수의 연구나 실천과 연관된 사회학자로 단연 조희연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연구는 거의 인용되지 않고 있다. 1993년에 출판된 박사학위논문이 제1장에서 딱 한번 인용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민주화운동에 관한 제2장에서도 조희연 교수의 연구는 전혀 인용되지 않고 있다. 또한 김동춘 교수는 아예 한번도 인용되지 않고 있다. 정대화 교수의 경우에는 2002년 대선에 관한 논문이 몇 차례 인용되고 있을 뿐이다.
같은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했다면,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손호철 교수의 글은 상당히 논쟁적이다. 이 점에서 조희연, 김동춘, 정대화 교수 등을 비롯해서 최장집, 정해구, 강원택 교수 등의 연구에 관해 손호철 교수가 적극적으로 소통해서 아예 한 권의 책을 낼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부탁드리고자 한다.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