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돌멩이 하나

최근 송경동 시인은 한국문학의 수면을 향해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그의 첫 번째 시집 󰡔꿀잠󰡕은 외면당한 노동자의 현실을 다시금 불러내어 여전히 노동자의 현실은 “빨간 불”임을 보여준다.

공친 날 함바
손톱 밑 때 빼고
깔끔한 옷 갈아입고
현장 입구 횡단보도 앞에 선다
하루쯤은 현장 아닌 곳에도 가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하나
수첩 속 전화번호들이 각기 암호를 대라한다
횡단보도 저 편의 길이 ‘암호’한다
내 암호명은 일용공비정규직
노동 이외엔 어울릴 친구가 없다고
빨간 신호등이 자꾸 깜박거린다.
거리가
닫힌다
- ｢암호명｣ 전문

일이 없어 공친 날, 오랜만에 “때 빼고, 깔끔한 옷 갈아입고”, “현장 아닌 곳에 가보고 싶”어 길을 나서지만 정작 그는 갈 곳이 없다. 현장이 아닌 세계로 진입하려는 문 앞에서, 그의 암호인 “일용공비정규직”은 거부당한다. 그가 발신한 암호는 접근조차 허용되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돈다. 현장이 아닌 그 세계는 소통 자체가 어려운, “빨간 신호등”이 깜박거리는, 노동이 소외된 불편한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닫힌 거리에서 “노동 이외엔 어울릴 친구가 없”다는 것을 깊이 각인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음지가 많다. 그가 의도적으로 음지의 세계를 조명하려 하지 않아도 그의 몸에 묻은 그늘은 시의 몸을 입고 민중시, 노동시의 현재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어둠 깔린 가리봉오거리
버스 정류장 앞 꽉 막힌 도로에
12인승 봉고차 한 대가 와 선다
날일 마친 용역잡부들이 빼곡히 앉아
닭장차 안 죄수들처럼
무표정하게 창밖을 보고 있다

셋 앉는 좌석에 다섯씩 앉고
엔진룸 위에 한 줄이 더 앉았다
육십이 훨 넘은 노인네부터
서른 초반의 사내
이국의 푸른 눈동자까지
한결같이 머리칼이 누렇게 쇠었다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으로도
그들을 그릴 수가 없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문

시인은 “어둠 깔린 가리봉오거리”의 버스정류장 앞에 서있는 봉고차 안을 바라본다. 그 안에서 “죄수처럼” 빼곡히 앉아있는 “날일 마친 용역잡부들”은 “육십이 훨 넘은 노인네부터 서른 초반의 사내”와 “이국의 푸른 눈동자까지” 모두 “머리칼이 누렇게 쇠었”음을 발견한다. 그리곤 그들의 무표정과 묵언 앞에 어떠한 수사로도 “그들을 그릴 수가 없”음을, 어떤 은유와 상징도 무색함을 시인은 알아챈다.
또한 “목발을 짚고 철일을 하는 김씨”(｢목발｣)와 날일조차 얻기 힘들어 “가는 어깨”를 보이며 돌아서는 “오십 대 중반의 사내”(｢공구들｣), 그리고 “철골공사장 수십 미터 허공 외빔 위에서 만나면 번갈아 길 터주며 목숨을 나누던”(｢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최씨 아저씨의 죽음을 통해서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인 그의 일상으로 걸어 들어 가보자. “땡볕 공사장”이나 “용접꽃”을 피우며 일하던 힘겨운 노동현장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그의 식탁은 “쇠밥”이거나 “외상” 장부로 지은 “눈물국”의 밥상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는 쓰지 못하고 해방평등이라고 쓰지 못하고”,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일기를 쓰는, 언제나 몸을 부리며 노동을 하지만 현실은 늘 외상을 지는 신세이다. 노동자인 그의 벌이는 언제나 “싹수”가 없지만, 그는 “평지”(｢길동무｣)에 살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길은 “비포장길”, “아나방길”, “고층 철골 빔길”, “흙탕길”(｢길｣)인 노동자의 길이지만, “평지”를 향하여 함께 가야할 길이다. 그 “평지”란 다름 아닌 함께 나누는 평등한 세상인 것이다.

잡범 징역 두 번 살며 배운 거라곤

내 밥그릇 두 개면
누구 하난 밥그릇이 없다는 것

내가 떡 잠이면
누군 하나 새우잠이라는 것

낙하산 타고 들어온 놈 있어
세월 간다고 왈왈이 되지 않는다는 것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야지
도중에 그만두면 영원히 찌그러진다는
- ｢마음의 창살｣ 전문

송경동 시인의 다양한 노동 경험은 그를 현장 활동가로 남게 한 힘이기도 하다. 그가 불의와 맞서 싸우려는 의지는 “오르다보면 차라리 떨어져 죽고 싶던 그 고층 철골 빔길”을 거쳐, “한 덩이로 녹아 흐르는 화엄 용광로 뜨건 도가니”(｢제철소에서 일할 때｣)같은 열정으로 “지금도 그 뜰”에 남아 떠나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불순한 꿈을 꾸는 자

송경동 시인의 시는 자기내면이나 자의식으로 침잠하기보다는 고통 받는 민중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이 곧 노동자의 길, 민중의 길이었기에 구체적인 경험이나 서사를 시 속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전혀 작위성이 없다. 그의 시는 곧 그 자신, 노동자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자족적이거나 자기연민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사회구조가 여전히 모순에 차있기 때문이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으로써의 활동이 그의 시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여전히 노동의 현장에 남아서 그리워하는 “그 뜰”은 무엇일까?

리어카보관소가 있는 종묘 담 끼고 돌아
싼 밥집 모퉁이 이층
불교달력을 만들던 하꼬방 인쇄소
찬바람 일 때면 중절모 스님들이 티 몇 잔 불러두고
다방 아가씨 손금 봐주는 소리가 조용조용하게
간이 칸막이 너머로 들리던 곳
염주알 마냥 둥그렇게 꿰어 도는
달력 조하이＊ 일에 지치면
환풍기 창 너머 종묘 뜰
오백 년도 넘게 푸르른 단풍나무들처럼 살고 싶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 난데없이 울리던 축포소리
거리는 연일 들끓는 광장이 되고
이따금씩 눈시울 적시던 최루탄가루
한적하던 나뭇계단을 울리며 한 떼의 청년들이 들닥치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우린 원죄처럼 얼굴을 숨겼다
그때도 치욕이라는 말을 알았을까
작업장 구석에 쥐새끼처럼 숨어
토끼눈 반짝이던 청년들보다
우리가 더 막다른 곳에 다달아 있다는 아득함
내 뜻이 원하는 곳으로 당당히 끌려갈 수 있다면
하지만 상념도 잠깐, 우린 아니라고
우린 어떤 불순한 꿈도 꿔본 적 없는 조하이공일 뿐이라고
곤봉 든 체포조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얼굴로
애걸하며 우리도 증오라는 말을 알았을까
수백 년의 세월을 가지런히 모아 풀칠하고
또 한 해씩을 떼어 철을 하다보면
환기창 프로펠러 사이
고요한 종묘 담 너머 뜰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 ｢나는 지금도 그 뜰에 가고 싶다｣ 전문

시적 화자는 지금 허름한 인쇄소에서 “조하이”일을 하는 단순 노동자로 “수백 년의 세월을 가지런히 모아 풀칠”하거나, “한 해씩을 떼어 철”을 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간이 칸막이 너머에서는 스님들이 “다방 아가씨의 손금을 봐주는 소리”가 들리고, 또 그 너머 밖의 광장에서는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시위대의 흩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 간이 칸막이 너머의 소리와 광장의 소리는 퍽이나 대조적이다. 이런 대조적인 상황에서 시적 화자는 그의 작업장으로 들이닥친 “한 떼의 청년들”앞에서 웬지 모를 부끄러움에 “원죄처럼 얼굴을 숨”긴다. “그때 치욕이라는” 것을 느낀다. 반면에 “곤봉 든 체포조들에게”는 “우린 어떤 불순한 꿈도 꿔본 적 없는 조하이공일 뿐이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얼굴로 애걸”한다. 이때 그는 “증오라는” 것을 느낀다.
“치욕”과 “증오” 사이에는 무수한 갈등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는 노동자이므로 한낮의 시위대는 참여할 수 없고, 더구나 그의 밥그릇이 위태해질 것이기에 그 청년들(아마 대학생들일)보다 “더 막다른 곳에” 다다라 있다는 아득함이 그를 “어떤 불순한 꿈도 꿔본 적” 없다고 체포조에게 애걸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감춘 얼굴에는 자신의 “뜻이 원하는 곳으로 당당히 끌려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불순한 꿈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한 “불순한 꿈”이 그를 치욕에서 증오로 바뀌게 한 것이고, “지금도 그 뜰”을 그리워하게 만든 것이다. “고요한 종묘 담 너머 뜰로 붉은 해”가 지고 있지만, 내일은 다시 뜰 해를 품고 그는 여전히 남아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꾸는 꿈이 결코 “불순한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그 뜰”이란 그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이루고 싶었던 세계이다.


3. 여전히 유효한 민중문학을 위해

민중문학이 쇠퇴일로를 걷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배경들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 동구권의 몰락 및 1991년 소련 연방체제의 해체를 들 수 있다. 이로써 야기된 사회적 변화는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신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개인적인 신념의 전환과 더불어 민중문학의 궤도에도 혼란과 변화의 길을 내게 하였다.
1980년대의 박노해나 백무산을 위시하여 문단의 조명을 흠뻑 받은 몇 안 되는 시인들을 차치하고 보면 사실 민중문학을 하는 시인 중에는 중심에서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고 여전히 소외된 이들이 많다. 그러나 또 한편 소외되어 온 시인들에게 조명을 받아 온 시인들에 필적할 만한 작품들이 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좀더 진지한 자성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송경동 시인이 이루고 있는 시적 성취는 매우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송경동 시인은 꽤 오래 묻혀 있었던 시인이다. 80년대 후반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던 시기부터 현재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와 도서출판 삶이 보이는 창,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사업운영회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활동으로 그는 시집을 엮기조차 바쁘게 몸을 부리면서 살아왔다. 이제 그의 노동하는 삶을 엮어낸 시집을 통해서 민중문학, 노동문학에 대한 평가나 가능성들을 새롭게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 뜰”에 남아, 가리봉 “오거리 뼈해장국” (｢오거리 뼈해장국｣) 집에서 국밥을 시켜놓고 상처받은 옛 동지들을 기다리는 그가 눈에 선하다. 그의 시를 버티는 힘은 이 기다림의 시간에서 비롯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
그는 지친 노동을 끝내고 귀가하는 힘든 시간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노동 중의 휴식시간에서도 긍정적인 해학을 발견할 줄 안다. ｢꿀잠｣이나 ｢이 총각뎐｣, ｢철야｣ 등에서 볼 수 있는 그의 건강함은 시집의 빛을 더한다. 표제작 ｢꿀잠｣은 생생하고 솔직한 노동자의 점심시간을 보여준다.

전남 여천군 쌍봉면 주삼리 끝자락
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 있으리
이 삼십 분 눈붙임이지만 그 맛
간 밤 갈대밭 우그러뜨리던 그 짓보다 찰져
신문쪼가리 석면쪼가리
깔기도 전에 몰려들던 몽환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꿈자락 붙들고 늘어지다가도
소혀처럼 따가운 햇볕이 날름 이마를 훑으면
비실비실 눈감은 채로
남은 그늘 찾아 옮기던 순한 행렬
- ｢꿀잠｣ 전문

“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에서 노동으로 얼룩진 “머슴밥 먹고” 짧은 “이 삼십 분”이지만, “꿈자락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꿀맛 같은 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찰진 노동자의 점심시간을 보여준다. “땡볕 공사장”의 노동을 “가까스로” 끝내고 “간이 세면장 거울 앞”에서 시인은 “쇳가루 흙먼지 땀으로 버무러”진, “고운 청동빛” 알몸을 보면서 “까닭없이” 고마워하며 하루의 허물을 씻는다.

땡볕 공사장
가까스로 하룻일 마치고
간이 세면장 거울 앞
알몸으로 서면
데인 자리 긁힌 자리 찍힌 자리 모두
쇳가루 흙먼지 땀으로 버무러져
고운 청동빛

찢긴 휘장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저녁바람 한 점
찔찔거리는 한 꼭지 물에도 겨워
까닭없이 죄인처럼
고맙다 고맙다 하며
정성스레 하루의 허물도 씻는
저물녘
창 너머 작업등도
수박등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시간
- ｢저녁 불빛｣ 전문

“창 너머 작업등도 수박등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자신의 노동을 갈무리하는 그의 저녁은 신성하기조차 하다. 작업장에서 “선잠 든”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반복되는 힘겨운 노동을 보여주지만, 그 지루한 노동의 끝에는 “아름다운” 저녁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거미와 살지 않는다
공중에 투망을 치고 해종일 헛걸음인
한 사내와 산다

나는 새와 함께 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통통 튀어 다니며 하늘오르간을 치는
한 물찌똥 꼬마와 산다

나는 꽃과 함께 살지 않는다
향기나는 주먹을 쥐고 내 가슴 콩콩 때릴 때는 언제고
어느 틈엔가 쌀쌀이 지고 마는
변덕쟁이 한 여인과 산다

꿍하며 살고 갸웃하면서 살고
가로저으면서 산다
그래그래 끄덕끄덕하면서
환하게 산다
- ｢나는 말과 함께 살지 않는다｣ 전문

아름답지만 힘겨운 시간들을 견디고 그가 얻은 결의는 “말과 함께 살지 않는”것이다. “말”이란 권력이고 폭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보다는 몸을 부리며 실천하는 삶만이 그의 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말과 함께 살지 않”고, “아무말도 하지 않”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들과 함께 “그 뜰”에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H빔 위에서 떨어질 뻔한”, 그의 “등을 꼭 붙잡아주던 그 손”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 기다리는 척 벼룩시장이나 교차로를 슬쩍 뽑던 손
무담보 신용대출 854-2514 전봇대에 붙은 번호표를 뜯던 손
전철이나 버스 손잡이를 잡지 않던 손
악수하기를 꺼리던 손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괭이가 박혀 있던 손

어이, 하며 저쪽 철골 위에서 환하게 흔들던 손
야, 임마하며 반가워 손아귀를 꽉 쥐면 얼얼하던 손
H빔 위에서 떨어질 뻔한 내 등을 꼭 붙잡아주던 그 손
- ｢손｣ 전문

시집의 문을 열면 바로 등장하는 ｢손｣ 에서는 다양한 민중의 모습이 “손”을 통해서 드러난다. 실업의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척 벼룩시장이나 교차로를 슬쩍 뽑던 손”이 등장하고, 살길이 막막한 골목길에서 “무담보 신용대출 854-2514 전봇대에 붙은 번호표를 뜯던 손”,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노동에 찌는 “손”이 등장하기도 한다. 손은 노동의 중요한 수단이며, 동시에 목숨처럼 서로의 등을 잡아주는 연대의 손이기도 하다. 시인은 노동하는 “손”, 서로를 잡아주는 “손”을 통해 민중시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거친 “손”을 내밀어 민중시에게 악수를 청하고자 한다. 천천히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길을 더 가고자 한다.
이제 그가 한국문학의 수면에 던진 작은 돌이 파문으로 번져나가 민중문학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쉽게 폐기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시적 성취를 통해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 뜰”에 남아서 시적공간인 현실과 끊임없이 사투할 시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