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에도 가끔씩 노을이 물들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때가 있다. 귤빛이거나 붉은빛이거나. 그런데 언젠가 붉게 물드는 건 노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때가 있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이야기하는데 코끝과 눈끝이 붉어지더니 서서히 얼굴이 물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 사람도 저리 물드는구나. 노을처럼, 노을보다 더 진하게 물드는구나. 그 사실을 알게 해 주었던 이를 만났다. 1959년에 태어난 오경숙 씨. 그이가 태어날 무렵이거나 그이보다 몇 년 뒤 태어난 이들이 공부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거리에서 싸우는 동안 그이는 잠시도 손에서 물마를 시간이 없었고, 떨어진 쌀독을 채우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이 같은 이들이 세상엔 더 많을 것이고, 그이 같은 이들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으리라. 어깨 부서지도록.


소 수레를 산 어린 노동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이모 집에 1년 있었죠. 우리 엄마 언니 집이죠. 전남 고흥군 고흥읍이죠. 일년에 돈은 2만원 받았어요. 먹고 자고 일을 했죠. 살림 일이죠. 이모가 뭐 하셨냐면 시골 읍내에 가면 제제라고 아침 시장을 보기 위해서 일찍 나가는 거 있잖아요. 구루마에다 도라지, 고사리 삶아다가 파는데 새벽 5시에 나가 아침 9시면 끝나는 거죠. 새벽시장인 거죠. 그 집에 내 동갑짜리가 있었는데 그때 걔는 중학교에 다니고 난 안 다녔어요. 그 나이에 그냥 밥하고 옛날에는 보리쌀 절구에 빻아서 비벼서 밥했죠. 밥 묻어놨다 이모가 시장에서 돌아오면 챙겨주고, 장날이면 장터로 밥 갖다 주고. 빨래는 냇가에 가서 하고. 저녁에는 도라지를 찢고. 광주에서 도라지를 떼어와서 찢는데 내가 도라지 엄청나게 잘 찢어요. 일년 동안 찢었으니까. 저녁 먹고 다 치우고 나서 8시부터 밤11시까지 두세 시간씩 찢었죠. 큰 다라 한 가득했지. 고사리도 마른 걸 떼어오잖아요. 그럼 다 삶아서 미리 준비해 두는 거죠. 1년 지나고 나서는 다시는 친척집에 안 온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 때문에 한 거죠. 그 이모가 우리 엄마를 많이 도와줬어요. 우리 집이 근처라고 해도 일년에 명절 때만 한두 번 갔죠. 그러니까 우리 친정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죠. 그 돈으로 소 수레를 샀더라고요. 난 돈 쓴 거 없었어요.


10년 간의 남의집살이

나와서 곧바로 서울 왔죠. 그때는 15살이었죠. 우리 친언니가 가정부 일을 좀 했는데 그 언니를 따라서 식당을 하는 먼 고모뻘 할머니가 있었는데 답십리 쪽에 일이 있다고 먹고 자고 하는 데를 소개해 준거죠. 한 달에 월급이 2만원이었나? 아니, 1만 4천원인가 5천원이었어요. 내가 들어간 날이 정월 대보름날이었는데 오곡밥을 하래. 오곡밥을 하긴 했는데 실수를 했지. 오곡밥은 돌이 엄청 많잖아요, 그걸 일어야 했는데 못한 거야. 밥은 잘했는데 먹을 때마다 돌이 씹히는 거야. 그 당시 드라마 ‘여로’가 엄청 인기였어요. 그날 저녁에 자려고 하니까 그때 처음 집 생각이 났어요. 거기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연탄불에 밥해서 학생 도시락 싸주고 청소하고. 아줌마가 아팠거든요.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가 그랬을 거예요, 아마. 나랑 같은 나이였죠. 어느 날은 주인아줌마가 그러더라고, 중학교 한문책을 주면서 배워야 된다면서 낮에 시간 날 때 한문을 계속 쓰기만 하래. 그래서 한문을 많이 알긴 알았어요. 거기서 몇 개월 지냈을 거예요. 돈은 집에 보내고. 내 앞으로는 하나도 안 썼죠. 그러다 몸이 안 좋아 집에 내려갔는데 나 집에 내려가면 열흘도 못 있어요. 성격이.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5일 만에 다시 누구 소개로 인천에 산부인과 원장 집에 애들을 돌보는 일로 가게 되었어요. 애들이 넷이었어요. 그때는 16살 됐죠. 밥하는 아줌마 있고, 청소하는 아줌마가 있어서 난 애만 보면 됐는데 8개월 된 갓난아기가 있고, 유치원 다니는 애, 초등학교 다니는 애가 있고 그랬어요. 내가 무슨 일을 했냐면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유치원 데려다 주고 와서 초등학교 데려다 주고 끝나면 다시 데려오고 그랬어요. 거기서 월급은 한 2만원 받았을까. 그러다가 1년 가차이 그 집에 있다가 내려와 버렸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빨리 객지생활을 해서 그런가 집에를 못 있겠더라고.

우리 엄마가 있으라고 사정을 해서 광주 외삼촌 집에 있었죠. 고생 많이 했죠. 외삼촌 집에서 1년 먹고 자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엄마하고 돈 해결을 했으니까 월급이 어떻게 됐는지 그건 난 몰라요. 일년 딱 있고 다시는 진짜 안 있는다고 했죠.

그러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서 누구 소개로 어떤 약사 집에 있었는데 연희동에 있다가 전농동 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거기서 약국하고 붙은 살림집을 얻어서 내가 살림을 다 했죠. 월급은 얼마 받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받긴 받았는데. 이때 월급도 십원 한 장 나 안 썼어요. 1년에 한두 번씩 엄마가 올라오면 다 줬죠. 십 얼마 받았나. 그 당시는 월급이 좀 올랐어요. 거기서 잘 지냈죠. 그 당시가 1979년도였는데 엄마가 언니네 집에 올라오셨는데 아프셨어요. 하혈을 엄청 심하게 하셨더라고. 거짓말 안 보태고 양동이 하나 만큼 피를 쏟으셨던 것 같아요. 그때 언니 집이 전세로 2백이었어요. 나 있는 데랑 가까웠어요. 저녁 때 전화가 왔어요. 공중전화 하잖아요. 엄마가 다 죽게 생겼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안 되겠어서 사골을 사 갖고 갔죠. 우선 그거 끓여먹으니까 좀 나은 것 같다고 하는데 안 되겠어서 다음날 아침 일찍, 휘경동 보면 위생병원이라고 있죠, 접수를 하고 엄마를 모시고 갔죠. 그랬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대요. 수술비가 2백만원 돈이 든다는데 그 당시 2백만원이 어디 있어요. 낮에 시간이 나서 청량리 옆에 가톨릭 병원이 있어요. 거기 가서 검사를 다시 했는데 급한 것이 수혈을 한 6, 7대 맞아야 된대요. 안 하면 죽는다고, 돌아가신다고. 수혈을 반쯤 받다가 못하겠다고 퇴원했어요. 그 다음날 검사 다시 하고. 이틀 후에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거기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요. 몸 보호만 잘하면 된다고. 아무 이상 없다고 하니까,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니까 우린 한 시름 놓았지요. 내가 혼자서 눈치봐가면서 엄마 모시고 병원 다녔죠. 그 당시 내가 20 몇 만원 챙겨드렸죠. 내 남동생이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됐는데, 그 옛날에 자전거가 비쌌잖아요. 거기서 자전거 사 주고 뭐 사주고 그랬더라고요.

약국 집을 나와서 식당 하는 친척집에서 여의도에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갔어요. 월급은 다른 데보다 많이 주는 편이었죠. 주인아줌마를 만나서 갔는데 아줌마가 열쇠만 주고 휭 나가는 거예요. 처음 가자마자. 저녁 밥 때가 됐는데도 안 와 버려요. 나중에 김치거리 사 가지고 오더라고요. 옛날에는 안방문이고 장롱문이고 다 잠가버리잖아요. 의심하는 집은 그래요. 그런데 그 아줌마가 김치거리 다듬으면서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패물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사람을 데리고 있는 한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뭐 하러 그럴 필요가 있냐고 믿고 사는데. 여의도에서 아파트에서 살았거든요. 내가 다 살림했어요. 고추장까지 담고. 80년도였을 거예요. 옛날에 봉제공장이 한참 인기였는데 그 집 아저씨가 봉제공장 사업을 크게 했어요. 나보고 시집갈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했죠. 그 당시 의료보험 카드 만들기 힘들었잖아요. 공장직원으로 해서 내 거 의료보험카드를 만들어주었어요. 그 뒤 아줌마가 아들을 낳았는데 병원 퇴원한 날부터 딱 하루 집에 있었나, 이틀부터 핏덩이를 놔두고 밖으로 다니는 거예요. 놀러. 아침에 돈만 놔두고 나가는 거야. 내가 다 살림해가면서 애 우유 먹이고 목욕시키고 혼자 키웠지. 거의 3년을 있었을 거야. 그 애를 세 살 때까지 키웠으니까.


갑자기 찾아온 결혼

그 당시 나이가 딱 스물 네 살이었어. 집에서 선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올케언니가 ‘고모 한번만 내려왔다 가라’고 해서 내려가 선을 한번 봤어요. 나이는 5살 차이 났나. 트럭 운전인가 하는데 내가 남자를 사귀고 그런 일이 없으니까 그랬는지 지금 남편을 만나려고 그랬는지 그냥 올라왔어요. 일하던 집에서도 아이가 찾고 난리가 났다고 연락이 오고. 3일만에 올라갔어요.

엄마가 며칠 뒤에 창경원 구경 간다고 올라오셨어요. 옛날에 시골에서 올라와서 창경원 구경 많이 갔잖아요. 일하기도 심란하고 그래서 저녁 때 안 들어갔어요. 아침에 가보니까 파출부를 불렀더라고요. 그 파출부 아줌마가 나한테 막 얘기를 거는 거예요. 고생 많이 했겠다고. 그러니까 내가 그때 눈이 멀었나 봐요. 그 아줌마가 좋은 남자가 있다고 선을 보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아줌마 사돈이었어요. 나는 시집을 좀 늦게 가려고 했는데 그때가 좀 예민한 나이였나 봐요. 하루 일하러 온 아줌마였는데. 이상하죠. 같이 콩나물 다듬으면서 얘기하다가 선까지 보게 된 거죠. 내가 세상물정 모르니까. 마침 엄마도 메주 팔러 서울 오신 터라 선을 봤어요. 그 당시에는 5살 차이가 난다고 했는데 10년 차이였어요. 술 담배도 안 한다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나중에야 얘기하더라고 10살 차이 난다고.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하도 고생을 했으니까 나이 차이가 많으면 고생 안 시키고 살 거라고 승낙하셨죠.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가 한 살 차이여서 티격태격 많이 싸웠거든요. 나이 차이 나면 아무래도 잘 해주겠지 해서 허락한 거죠. 일하던 집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시집 다 보내주고 다 해준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눈이 뭐에 뒤집혀 씌운 거지요. 가을 접어들면서 일을 그만두고 나왔죠.

그 사람이 방을 얻어 가지고 있더라고요. 결혼식 안 하고 살았는데 우리 딸내미 백일 때 절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우리 큰애가 워낙 순해서 옆집에 맡겨놓고 다른 손님 없이 식구끼리 모여서 결혼식만 올렸어요. 우리 남편이 사람은 착한데 알고 보니까 형제 중에 제일 생활력이 없더라고. 내가 결혼비용으로 150만원이 있었는데 그걸로 집을 전세로 돌렸어요. 여의도 일한 데서 150만원을 줬거든요. 그러니 나는 집에서 돈을 한푼도 쓴 게 없죠. 시집 쪽에서도 십원 한푼 안 도와줬죠. 우리 아저씨, 무슨 일은 하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어요. 직장 다니면 뭘 해요. 조금 다니다 그만두고 조금 다니다 그만두고 하는데.


계속 헤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아이 낳고서는 일을 못했죠. 내가 거짓말만 치게 됐죠. 전세로 돌린 돈을 야금야금 빼서 생활비로 쓰기 시작했죠. 우리 큰애 났을 때는 남편이 잠깐 일해서 월급 타오면 우리 애 먹을 것도 사다 주고 해서 큰애는 잘 먹었지. 밑으로 애가 금방 들어섰네. 떼러 갔다왔는 데도 떼진 게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둘째를 났는데 150만원을 까먹고 까먹고 한 것이 50만원 밖에 안 남았어. 그래서 나중에 50에 10만원짜리 방 한 칸에서 살았지. 거기서 둘째를 낳았는데 눈이 엄청 많이 온 날이었어. 병원비가 십원 한푼 없으니까 남편이 친척집에 전화를 하더라고. 집에 쌀도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연탄도 서너 장 있었나. 만날 술 먹고 놀았지 뭐. 많이 일하면 두 달 했다니까요.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남 밑에서 일을 못 해요. 자기 형제들하고 천지차이더라고. 형제들은 다 자수성가해서 사는데. 사람은 원래 좋아요. 우리 큰애 낳을 때는 일을 했는데 둘째 낳을 때는 남편이 일을 안 했지. 우리 시누가 병원비를 지불했어요. 그해 8월에 시누가 혼자가 되어서 길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고. 없는 데도 그렇게 해줘서 마음에 항상 걸리는데 계속 헤어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내가.

그러다가 인자 돈 다 까먹었잖아요. 애 아빠 아는 사람이, 경기도 어디 시골인데 흙을 갈아서 파는 게 있대요. 산에서 돌을 갈면 된데. 그 일을 가면 먹고 자고 공짜로 다 해주고 월급을 한 달에 20만원인가 30만원인가 준다고 해서 거기로 이사를 갔네. 차도 잘 안 다니는 덴데. 가 보니, 아냐. 일도 엄청 힘들고 생각했던 거랑도 안 맞았어. 그래서 두 달 동안 겨우 10만원인가 만들어 왔어. 나는 애들 돌보고, 아저씨는 중노동을 했지요. 그래도 두 달 잘 넘긴 거죠. 일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못 하겠는 거지, 병나니까.

구로동으로 와서 알아보니 보증금 10만원에 5만원짜리 방이 있더라고요. 이 방이 어떻게 되었냐면요, 입구로 들어가면 양쪽에 집이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가구, 또 안으로 들어가면 네 가구, 또 들어가면 그런 구조로 방이 있어요. 주인이 월세를 다 받아가면서 살아요. 수도는 밖에 딱 하나 있고. 수도 하나 가지고 사는 거예요. 그러면 목욕을 맘대로 할 수 있나, 못 하지.


부업으로, 공장으로

거기서 부업도 해 보고 별 거 다 해봤어요. 마늘 까는 부업부터 시작했죠. 마늘은 10키로에 2천 얼마 그랬죠. 하루 종일 하면 10키로 좀 더 깠어요. 2천 얼마 받은 돈이 많은 건 아니었죠. 악세사리 부업도 해보고. 지금 하나은행 자리가 예전엔 인켈 전자 회사였는데 거기에도 다녔어요. 우리 애들 3살, 4살 때 거기를 다녔어요. 남편도 직업을 때려치우고 노가대를 다닌 거예요. 노가대를 계속 다닌 게 아니라 하루 가서 누가 잔소리하면 와버리고 그랬죠. 놀음이나 경마 이런 거는 안 했어요. 돈을 받으면 꼭 갖다 주고 그랬는데, 자기 뜻대로 안 돼서 그랬는가는 몰라도 이상하게 남 밑에서 일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날 그래.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인켈 전자회사에서는 월급이 6만원이었던가 그래요. 아침 10시 반, 쉬는 시간에 집에 와서 연탄불 갈고 애들 보고 가고. 애들은 돌아다니든 말든 그냥 놔두고 일 다녔죠. 어디에 맡길 돈이 안 되니까. 월세 주고 그래야 하니까. 전자회사는 옛날에 엄청 박했어. 또 낮에 3시 반 쉬는 시간에 잠깐 나오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고. 그러면 밥값은 나오죠. 거기는 얼마 안 다녔어. 애 아빠가 스트레스를 많이 줘서. 애 아빠는 밤 10시에 온다고 했으면 딱 10시에 와야 하는 거야. 그래서 때려치웠어요. 한 6개월쯤 다녔어요. 그래서 다시 집에서 닥치는 대로 부업했죠.

우리 작은애 낳을 때 진짜 쌀이 없어가지고 우리 시어머니가 올라와서 보고는 기가 막혀 하셨죠. 쌀 40키로 팔아주고 연탄 백장 팔아주셨죠. 지금도 그 얘기를 하셔요. 애 낳고도 남편은 도와주기나 했나, 지금은 좀 해주긴 해도. 한번은 술 먹고 컵을 던져서 손을 다쳤죠. 뼈가 다 보였죠. 우리 친정 엄마가 못 살게 하려고 눈치를 보면서 몇 번을 내려오라고 하는데 내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고, 내가 애도 둘도 있고, 우리 애 아빠 성격에 가만히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내 혼자 참고 가자 했죠.

공장에서 전선 자르는 일도 했어요. 거기는 월급이 십 얼마였어요. 월급은 잘 줬죠. 아줌마들 넷하고 일했는데 딱 일년을 있었어요. 퇴직금도 있었어요. 그 당시 선 자르는 기술자가 있었는데, 그 때 사탕 사주는 날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그냥 사탕을 사줬는데 우리 아저씨가 의심을 엄청 하게 됐어요. 내가 먼저 성질나서 그만 두었어요. 안 나가면 된다고.

장난감 공장에도 조금 다녀보고, 다 구로쪽이었어요. 가리봉하고. 차비가 없으니까 걸어가는 곳을 찾아야지. 1년 지나서 내가 12만원 받았어요. 이래도 보고 저래도 보고 그러는데 안 되더라고. 일곱 살 때 우리 큰애를 유치원에 보냈는데 작은애를 같이 보내면 돈이 안 되니까 못 보냈죠. 작은애는 혼자 한글이랑 숫자를 다 떼었어. 작은애가 주산을 두 달인가 배웠는데 고등학생 2학년과 맞먹었어. 석 달 보내다가 돈이 없어서 말아버렸어요. 남들은 다 밀어주라고 그러는데 못 그랬죠. 애가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 뒤에 뒷받침이 안 되니까 안 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 지금까지 학원 하나 못 가보고 컸죠.


번다고 벌어도 그렇게 일 해도 안되더라고요, 생활비가

어느 날 애 아빠가 이사를 가재. 돈 하나 없이. 아이들 저금통을 뜯으니 2만 6천 얼마가 나오더라고요. 우리 집세는 벌써 다 까먹고 두 달이 밀렸는데 무조건 이사가자고 그래. 근처에 2층에 방이 있는데 50에 8만원짜리 방이 나왔더라고. 살던 집에 비하면 대궐집이었죠. 2만 5천원에 계약했어요. 어디서 노가대가 나와서 남편이 5일 나가서 일해서 20만원을 벌어왔어요. 20만원 벌어서 집세 10만원 주고. 50만원 돈은 없잖아요. 동서한테 한 두 달 쓴다고 해서 50만원 빌리고. 거기 가서 우리 막내를 낳았지요. 남편이 그때 공장을 한두 달 다녔나. 밤에 야간으로 일하는 지하철 일도 하고. 하지만 워낙 밀린 게 많으니 힘들었죠. 오야지 따라 아파트 일 좀 다니고 그랬죠. 아들 낳을 때는 노임을 미리 받아와 병원 가서 낳고. 뒤에 아랫집이 비었는데 주인이 50에 18만원을 낼 수 있냐고 해서 우리가 다 쓰게 됐죠. 위아래 다 쓰게 되었는데 방세 한번씩 밀리면 장난이 아니게 밀렸어요. 나는 내가 번다고 벌어도, 그렇게 일해도 안되더라고요, 생활비가. 그 집에서 꽤 오래 있었죠.


일용직․주급제,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아들 낳고 나서는 일용직으로 일했어요. 삼화인쇄 많이 다녔잖아요. IMF 터지기 전에는 공단에 일이 많았지요. 하루 단가가 셌어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내가 야간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일 잘한다고 나는 꼭 꼈어요. 중노동이죠. 포장하는 거니까. 삼화인쇄에도 있었고, 2공단에 천재교육도 다니고. 벼룩시장 보고 찾아가는 거지요. 일당이 2만원이었어요. 우리 아들 4살 때였죠. 그때도 버스 한번 안 타고 다 걸어다녔잖아. 주급제로 다녔어. 돈이 급하니까. 돈이 급하면 주급제로 다니는 거야,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돈 받아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면 화요일날 돈이 나오고. 미친 짓이지. 집세도 잘 못 냈어요. 주급제로 엄청 많이 다녔죠. 내가 월급제로 안 했어요. 내 성격에 남한테 돈 빌려 달라고 아쉬운 소리 하면서 구애받기 싫었으니까. 나는 돈 빌릴 사람도 없고. 누가 나를 빌려주겠어요.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일용직으로 일하는 거지요. 퇴직금 이런 것보다 난 당장이 급하니까. 퇴직금 이런 거 상관 안 해요. 그러다가 IMF 터지고 인쇄소가 많이 없어졌잖아요. 전에는 야간도 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돈이 안 모아져요

식당에는 언제부터 가기 시작했냐면, IMF 딱 터진 해에 횟집에 갔죠. 인쇄소가 다 일이 끊겼잖아요. 벼룩시장 보고 식당을 찾아가면 나를 보고는 무조건 사람 찼다고 그래요. 광고를 내 놓고는 나한테는 안 쓴다고 그래요. 내 체격을 보고는. 내가 워낙 말랐으니까. 그러니 열 받죠. 내가 하루를 있어도 남한테 피해를 안 주고 일에 대해서는 확실한데. 내가 못 하면 일 자체를 찾아 나서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몇 군데를 찾아 다녔어요. 애 아빠도 자기가 신경을 썼지만 뜻대로 안 되니까 그랬던 거고. 남편도 술 입에 안 댄지 10년 됐죠.

식당 가면 홀 서빙은 내가 안 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내 같은 경우는 화장하는 것도 싫고 로션도 안 바를 정도니까 서빙은 체질에 안 맞아요. 주방 같은 경우는 내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죠. 애 아빠는 “가봤자다, ‘내일 오쇼’ 하면 그거 다 틀린 거다” 그래요. 그래도 나는 당장, 우리 둘째가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등록금이 18만원이었잖아요. 애들 기는 안 죽여야 하잖아요. 많은 돈은 못 벌어도. 나는 나대로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돈이 안 모아져요. 애 아빠가 놀아버리는 게 많아서 그런가. 애 아빠도 번다고 했긴 했겠죠.

한번은 횟집에 자리가 있어서 찾아갔어요. 둘째 데리고 가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보자마자 할 수 있냐고 해서, 할 수 있다고 했죠. 애 집에 가라고 하고 그 날로 일했죠. 내가 조건을 내걸었어요. 거기는 월급 날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난 미리 가불해서 쓸 날이 많을 거라고 그랬거든. 그렇게 해 주겠다고 그러더라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어요. 80만원인가 받기로 하고. 그런데 일한 지 3일 동안 엄청 전화가 많이 오더라고. 벼룩시장 보고 다들 전화하는 거지. 그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일자리가 없었으니까. 월급은 적어도 사람이 남아돌아가니까. 나도 거기 들어가기까지 열 몇 군데를 퇴짜 맞았거든요. 내가 차비가 없으니까 거기서 집까지 꽤 먼데도 걸어다녔어요. 아침에 남보다 일찍 가서 주방 치우고, 탕 만들고. 낮에는 탕 손님이 많고, 저녁에는 회 손님이 많았어. 전에 시간제로 일하던 아주머니가 나한테 반찬을 가르쳐주더라고. 주인아주머니하고 일손이 맞았어요. 그런데 거기서 오래 못 있었어요. 내가 아팠거든요. 20일정도 일을 하는데 계속 하혈을 했던 거예요. 하루는 대청소한다고 파출부까지 불러서 일을 하는데 아침부터 몸이 안 좋더라고. 춥고 그랬어요. 주인아주머니가 음료수도 가져다주고 손도 따주고 그랬는데 안 좋더라고. 아침 11시 50분부터 2시 반까지 탕 내기가 바빠요. 서빙하는 언니 중에 같은 고향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언니한테 돈 5천원만 빌려달라고 해서 약국 가서 약 사먹으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러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도로 그러고. 저녁 6시 반쯤 되니까 손님들이 들어오는데 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 앞이 안 보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거야. 7시 반이 되니까 사람이 아예 안 보이는 거야.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 가서 쉬었다 내일 오겠다고 간 거야. 5천원 빌린 데서 약을 2천원 어치 사고 3천원이 남아서 택시를 타고 가려는데 차에서 내려서 집에까지를 못 걸어갈 것 같더라고요. 집에 전화해서 둘째한테 나와 있으라고 했는데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요.


5년 간 하혈을 하면서 일을 한 노동자

약국에도 돈 없이 갖다 먹고 나중에 갖다주고, 쌀집에도 얼마나 외상을 많이 했는데. 쌀집에 외상하고, 연탄도 외상하고. 그래도 준다는 날짜에 정확히 주었죠. 애 아빠도 성격이 그렇거든. 나도 그렇고. 그 뒷날 병원에 가니 빈혈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안 좋아서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는데 피가 3분의 1밖에 없대. 그러니까 미련하기는 되게 미련했죠. 3일만 늦게 와도 죽었다는 거죠. 한 5년 하혈을 하면서 일을 다녔다니까. 그게 마지막 단계에 온 거였나 보죠. 점점 가면서 심해졌지.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면 심해지고. 좀 쉬면 덜하는데 가면 갈수록 더 심해졌죠. 열흘 하던 것이 보름으로 늘어나고. 식당 다니면서 20일 동안 내내 하혈을 한 거죠. 처음 그 즉시 치료를 했으면 모르는데. 보험료도 몇 달 밀려버리니까 혜택이 안 되고. 식당에서 받을 돈이 30만원 정도였는데 애를 보내니까 주더군요. 중환자실에 일주일을 있었죠. 돈이 없어서 병원비는 친척들한테 미뤘어. 남편이 친정 엄마랑 오빠한테 전화했는데 우리가 이렇게 사니까 안 좋지, 그렇게 죽도록까지 만들고 이제 돈 없으니까 전화하느냐고, 우리 엄마는 일부러 정신 차리라고 말했는데 애 아빠는 오해했지. 자네가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고 했나 봐. 못이 박이게 얘기 한 거지. 애 아빠는 알린다고 알렸는데. 퇴원하고 나서 시누가 한약을 해 주면서 한 재 더 해 먹으라고 돈을 주었는데 지어먹긴 뭘 지어먹어. 생활비로 썼지.

그러다 보니 우리 둘째 등록금 내야 될 때가 돌아와요. 한 20일 쉬었을 거야. 남편이 밖에 나가보자고. 남편도 일자리에 신경 썼죠. 동네에 아파트 들어서고 나서 식당이 많이 생겼는데 갈비집이 새로 생겼어요. 지나가는데 ‘주방보조 구합니다’라고 써 있더라고. 애 아빠는 들어가지 말래. 또 퇴짜 맞을 게 뻔한데 뭐 하러 들어가냐면서. 하도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요. 들어가서 사람 쓰냐고 그러니까 보건소 가서 보건증 떼어 오래. 거기도 아마 80만원이었을 거야. 다음날부터 나올 수 있냐고 해서 나올 수 있다고 하니까 나오래. 내가 그때 뭘 썰었는데 마음에 든다고 했을 거야. 며칠 지나니까 열쇠를 날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미친 짓을 다해. 그걸 말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식당 두 집 다 나 때문에 뒤에 오는 사람들이 고생해. 식당에 가면 지저분한 데는 다 청소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시키지 않아도 하니까. 그러면 누구는 이렇게 했는데 하고 주인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요구하는 거지. 그런데 그 성격이 잘 안 바꿔지더라고요.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안 해요. 난 남 돈 벌어먹는 한에서는 할 만큼 한다고요. 나는 내가 자신 없고 내가 능력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그만둔다고 해 버려요. 무슨 일이든 그래요.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내 마음에 항상 그래요. 그냥 앉아 있는 거는 싫어요. 여기는 오래 못 있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딸 등록금 때문에 들어갔어요.

그 때 두 달 정도 일하다 다시 몸이 안 좋아서 그만두었어요. 언니가 삼성제일병원에 가보자고 그래서 며칠 다녔는데 자궁에 혹이 너무 많대요. 하혈도 그게 원인이었대요. 그걸 제거해야 한대요. 마취하고 수술했죠. 그 뒤로는 괜찮았죠. 그러고도 혹은 있고. 거기서도 그때만 치료받고 말아버렸어요.

식당 그만두고 나서 치료받고 난 뒤에 야채 집에서 10개월 있었어요. 다듬고 팔고 그랬죠. 구로시장에서. 여기도 주급으로 달라고 했지요. 열흘에 한번씩 줬는데 잘 줬어요. 시장에서도 주인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한두 사람은 월급제로 써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죠. 남한테 빚은 안 지려고 했어요. 적금도 못 들고 그렇게 살았어요. 저금할 여유는 전혀 없었죠.


공공근로와 자활후견기관을 통한 일자리

그 뒤에 공공근로가 생겼잖아요. 우리 애 아빠가 먼저 신청했죠. 안양천인가 그쪽에서 일했는데 혈압이 있는데 추운 데서 일해서 저녁 때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자더라고. 이틀 다니더니 못하겠대. 나는 파출부 자리가 있으면 다니고 있다가 1999년, 봄쯤 되어서 공공근로 신청을 했어요. 동네로 썼는데 난지도로 떨어졌지. 쓰레기 중에서 장난감 분류하는 거야. 한 달쯤 다녔는데 거리가 멀다고 한 사람 두 사람 떨어져 나가더라고. 그런데 우리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선생님이 우리 애를 잘못 봤는가 애가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더라고요. 급식당번 할 때 학교를 갔는데 선생님 책상서랍이 약간 열려 있었어요. 몰랐는데 거기에 돈봉투를 넣으라고 하는 거라고 하대요.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죠. 선생님이 아이 말을 안 믿어주는 것도 있었고, 아무래도 난지도까지는 멀어서 못 갈 것 같다고 구청에 갔어요. 어린이집도 좋고 아무 데나 좋다고 하니까 여성인력개발원을 연결해주더라고요. 거기서 9개월 일했죠. 거기서 일할 때 나보고 누가 영세민 신청을 하라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서류 써서 신청했죠.

우리 아저씨가 자꾸 이사하자고 해요. 학교 뒷담 쪽에 방이 4개인 집이 전세 7백에 난 거예요. 무조건 계약을 했죠. 계산을 해 보니 2백 정도 있었죠. 아는 사람이 서슴없이 백만원을 빌려주더라고요. 공공근로에서 함께 일하면서 언니라고 했던 분이 2백만원을 빌려주고. 한두 달만 쓰고 주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애 아빠가 월급 탈 때마다 갚았지요. 나를 믿고 빌려주었겠지만 나는 더없이 고맙지요. 형제간들도 안 빌려주는데. 그때 영세민 서류 하는데 병원 진단서만 있으면 된대요. 처음에는 안 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다시 넣으라고 해서 되었죠. 어려운 시기에 혜택 받았죠. 애 아빠는 밀린 돈 갚는다고 혈압에 약 먹어가면서 일했죠. 우황청심환 먹으면서. 그때 처음으로 일을 많이 했어요. 방세 밀린 것도 내야하고, 빌린 돈도 갚아야 하니까 애 아빠가 다리가 퉁퉁 부어가면서 일을 했어요.

공공근로는 한 60만원쯤 되었죠. 빚 다 갚고 나니까 남편이 병이 나버렸어요. 한 9개월 걸렸죠. 7백이란 돈 만들기 위해서 9개월이 걸린 거죠. 빚은 3백이었고. 내가 번 돈으로 십원 한 장 못 쓰고 그런 상태였죠.

공공근로 끝나고 자활후견기관으로 바뀌어서 어린이집에 나간 거예요. 아저씨가 일을 못하게 되었어요. 앞이 안 보인다고 했어요. 덩치는 좋고 그러니까 남들은 일할 수 있는데 돈 받는다 하지만 사실은 안 그렇거든요.
집, 없는 이에게는 무거운 짐

살던 곳이 철거되면서 시흥동에 임대아파트가 나왔는데 처음부터 나는 임대아파트에 안 간다고 했어요. 1200만원인데 내가 다시 5백만원 빌릴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주거비 받아서 광명으로 갔어요. 철거되기 전까지 몇 차례 이사하긴 했지만 그 동네에서 18년을 살았죠. 벼룩시장을 보고 광명으로 집을 알아봤는데 전세 2천 5백짜리가 나왔어요. 그러니 또 천만원이 부족하네. 누가 5백을 빌려준다고 해서 2천은 됐는데 5백이 모자란 거야. 그래서 2천에 월세 10만원으로 합의를 보았어요. 광명에서도 자활후견기관을 통해 독거노인 집을 찾아가 청소해주고 씻겨주고 그러는 일을 했어요. 토요일 일요일에는 예식장 일을 뛰었지요. 이자 줄 거, 갚을 거 해야 하니까. 개봉동에 있는 예식장이었는데 신문 보고 갔더니 나이 많다고 이런 일 해봤냐고 전화번호 남겨놓고 가라고 해서 우리 남편이 또 틀렸다 그랬는데 전화가 와서 가서 일했더니 원래 5만원 준다는데 5만 5천원 주더라고요. 죽어라고 일 했죠. 하루에 6천 5백 명이 먹을 음식인데. 새벽 6시까지 가서 저녁까지 일하는 거지. 그 뒤로 계속 불러서 가게 됐지. 그래도 나중에 집세 밀렸는데 뭘. 큰애가 보너스 타면 빚 갚고. 빚은 다 갚았죠. 지금은 가리봉동에 2천만원에 20만원 세 주고 살아요. 우리 큰애가 번다고 영세민 지원도 이젠 끊기고.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

안 해 본 일이 없지. 공부방 다닐 때는 일 끝나면 저녁 때 갈비집에 다녔어요. 그리고 자활후견기관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중간에 놀 때는 여성인력개발원에서 연락이 오면 파출부 일 나가고.

위로 두 딸애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했어요. 돈 백 정도 받아요. 아직도 저금은 못해요. 빚이 왜 없어요. 집 얻는 데 든 빚은 갚았는데 애 아빠랑 나랑 병원비로 빚졌는걸. 작년에 내가 자궁을 아예 들어냈어요. 큰애가 백만원 내서 병원비 하고. 아저씨는 암으로 7백 정도 병원비 들었죠.

수술하고 난 뒤 일이 없어서 막막했죠. 벽보를 봤더니 준공청소가 나왔더라고요. 하루 일당이 4만원이라고 써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 전화했는데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다음날부터 나오라고 그래요. 3명 뽑는데 엄청 많이 왔더라고요. 아파트 지어놓고 몇 번씩 청소하는 거죠. 막 짓고 나서 먼지 뒤집어쓰고 청소하는 거죠. 새벽 6시에 나가서 오후 5시에 끝나는데 거리에 따라서 다르죠. 경기도 남양주까지도 가는데 거기는 새벽 5시40분에 출발해요. 차로 다같이 가는 거지. 그런데 그 일 맡아서 하는 사람이 망해가지고 월급을 잘 안 줬어. 월급제였는데 나는 돈이 필요해서 주급으로 받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필요할 때 3일전에만 말하래. 수술하고 20일도 안 되어서 일 다니기 시작했던 거죠. 안 간 데가 없어요. 파주에 기계 닦으러도 가고. 나보고 기계 잘 닦는다고 그래. 그런데 돈이 잘 안 나왔어요. 작년에 일한 돈을 엊그제 마저 다 받았네. 이 앞전에 아저씨 병원비 때문에 어떻게든 해 달라고 했더니 간신히 20만원 해 주는 거야. 자기는 돈 받아서 다 쓴 거지. 준공청소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예식장 일 다니고.

가계부 그런 거는 전혀 신경 안 써요. 애들 옷도 메이커 한 번 안 사줘보고. 우리 아들도 자기 누나들이 월급 받아서 뭐 하나 사주고 그랬지. 막내아들도 학원 하나도 못 보내고 있어요. 큰딸은 여상 나와서 경리일을 하고 둘째딸은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명품 옷매장이라는데 하루 일당 4만원이죠. 언제 잘릴지 모르죠. 지금 6개월 다녔어요.

지금은 내가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는데 한 달이면 80만원 정도가 생활비로 그대로 나가요. 각종 공과금에 우리 아저씨 약값도 무시 못하지, 담배값 줘야지.


제일 힘들었던 때

광명에 이사갈 때, 돈 때문에 그랬지 뭐. 친척들이 보증만 서주면 되는데 싫어하더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요. 나라에서 없는 사람을 도와주려면은 전세자금 대출해줄 때 보증인 없이 해줬으면 좋겠어. 계약서 보고 확인하면 되고, 못 갚으면 나중에 그 돈을 빼 가던가. 보증을 서라, 주인한테 뭘 해라 그런 게 까다롭더라고. 아직까지 그런 혜택을 한번도 못 받아봤죠. 이제는 해 보려고요. 조건은 된다고 하더라고요. 애들도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없는 사람들이 대출 받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있는 사람들이 해 먹으려니까 없는 사람들이 못 받는 것 같아요. 동사무소에서 대출 받는 거 없는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데 진짜 없는 사람들은 못 받더라고요. 진짜 없는 사람들은 자꾸 뒤처지는 거예요. 월세 살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잖아요. 집주인만 좋은 일시키는 거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만 살려주고 없는 사람은 깔려먹히는 거죠. 은행도 그러잖아요. 있는 사람만 대출해주고 없는 사람은 대출해주지 않잖아요. 그 자체부터 그런다는 거죠, 뭐든지. 보증 없이 대출해주면, 그렇게 해서 갚아 나가다보면 나중에 전세금이 자기 돈 되고 서민들이 그렇게 해서 살아나가야지 방법이 없더라고요.

자활후견기관도 그렇고 공공근로도 그렇고 잘못 된 게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남편도 일하려고 하니까 큰애가 일한다고 안 된대. 애들이 번다고 다 우리 주나. 공공근로 할 수 있는데 안 해 준다니까. 어떤 노부부가 허름한 집 하나 덜렁 있고 재산이 하나도 없는데 집 있다고 안 해 주던데 그럼 뭘 먹고살아요. 벌어야 먹잖아요. 자기 집이 아니라 전세 살아도 돈 많은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4천 정도 전세로 옮겨보려고 해요. 전세 대출만 해주면 몇 년 융자 갚아나가고 그럼 우리 돈이 될 텐데. 나중에 적금도 한 3년 부으려고 하는데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어요. 나보다 못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가난

내가 못 입고 못 먹고 하니까 친정이나 시댁에서 쌀 가져다 먹고 도움 받고 그랬어요.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서울에 계셨는데 회 한번 못 사 드렸어요. 워낙 내가 못 살았으니까. 돌아가시니까 더 맘이 아프더라고. 우리 시어머니도, 내가 전세만 살면 시어머니 모시고 살 텐데 그러지 못하니까 마음이 아프지. 그런 거에 대해서 힘들지, 일하는 거는……. 내 몸이 따라주는 한도에서는 일할 거예요. 나도 어느 정도 기반 잡으면 남도 돕고 살아야지요.


정리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가난은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하게 하고, 고향을 떠나오게 하고, 배움을 중단하게 하며, 한시도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어 늘 길거리 벽보를 바라보게 하고, 정거장에 놓인 정보지 함에 무수히 손을 집어넣게 하고, 발바닥 물집 잡히도록 돌아다니며 사람 쓰느냐고 묻게 하고, 발걸음 되돌려야 할 때 불안의 그림자 마음에 새기게 하고,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게 하고, 몸을 골병들게 하며, 병든 몸으로 다시 노동하게 하고, 그 치료까지 온전히 뒤집어 씌워 빚지게 하고, 늘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나야 하고, 비싼 세를 주며 살게 하고, 그래서 텅빈 통장조차 만들지 못하게 하고…….

건설현장 일만 빼고 안 해본 노동이 없는 오경숙 씨. 평생 쉬지 않은 일로 힘들고 아파 몸이 쓰러진 때는 있었지만 아직 스스로 고통을 포기한 적도 마음을 놓은 적도 없다. 그이가 지나온 시간들보다 앞으로 그이 딸들이 겪어낼 시간들이 한결 더 수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