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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지배원리로서 동일성 비판:
 󰡔자본󰡕의 「상품」장에 관한 철학적 해석

진보평론  제36호
박종성󰋯건대 박사과정/ 철학

돈은 인간의 모든 신을 깔보며 그 모든 신을 상품으로 바꾼다.
돈은 일반적인 가치, 스스로를 위해서
스스로 형성된 모든 사물의 가치이다.
따라서 돈은 전체의 세계, 인간의 세계와 자연으로부터
그것들의 고유한 가치를 약탈했다.
칼 맑스의 󰡔맑스의 초기 저작: 비판과 언론󰡕 중에서

1. 들어가며

자본주의적 합리성이 가져온 세계적 위기에 대해 비판은 자본주의의 팽창에 관한 󰡔공산주의 선언󰡕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는 과거에 제한된 비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본의 논리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자본주의화는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 가치로 해소”한다. 󰡔공산주의 선언󰡕에서 묘사된 세계화의 원리는 󰡔자본󰡕의 ‘상품’ 장 분석에서 밝혀낸 구체적이며 핵심 원리인 상품에서 화폐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가치형태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서는 󰡔자본󰡕의 상품 장을 정치 경제학적 논의가 아니라 동일성 원리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여 철학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상품 장 분석은 상품 분석에서 시작하여 가치형태의 완성된 모습인 화폐형태에 관한 맑스의 논의를 ‘동일성 원리’에 대한 비판―사실 맑스 상품 장의 논의가 동일성 원리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은 아도르노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상품세계와 화폐의 관계는 사회구성원과 사회의 관계와 동형적이기 때문에 동일성 원리는 사회지배의 원리로 작동한다. 따라서 가치의 표현형식인 화폐는 단지 가치를 표현하는 형식에 머물지 않으며 현대사회의 통합 및 포섭의 메커니즘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폐형태 도식은 가치를 표현하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가치표현 형식의 작동 원리인 동일성에 대한 비판은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여전히 유효성을 갖는 철학적 비판이다. 상품의 오디세이를 추적하는 이 길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형태에서부터 아주 현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가치관계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 표현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자본󰡕1권 제1장에서 밝힌 단순한 가치형태, 전개된 가치 형태 및 일반적 가치형태에 대한 분석의 주된 논제이다.


2. 동일성 원리의 사회적 본보기로서의 교환원리

가치형태의 발전된 형태가 화폐이다. 그런데 상품가치의 표현양식인 추상적 교환가치는 동일성 원리의 이론적 밑바탕이 된다. 다시 말하면 󰡔자본󰡕의 「상품」장으로부터 아도르노는 부르주아사회의 철학적 비판인 동일성 원리 비판을 이끌어내고 있다. 따라서 아도르노의 동일성 원리 비판은 󰡔자본󰡕의 「상품」 장의 철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부정 변증법󰡕을 거쳐 󰡔미학 이론󰡕에 이르는 아도르노의 저작에 한결 같이 흐르는 것은 ‘동일성 원리’(das Prinzip der Identität) 비판이다. 동일성 원리는 자연과 사회 가운데서 주체와 같지 않은 모든 것을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포섭하여 주체와 같게 만들려는 지배원리의 정신적 형식이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독일 관념론의 선험적 주체가 가진 현실의 능동적 구성의 힘은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충동을 나타낸다. 이때 “사물은 언제나 동일한 것, 즉 지배의 대상이라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왜냐하면 주체가 자연을 자율적 주체의 표준, 즉 “계산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맞춰 측정할 수 있도록 자연을 단순한 지배의 객체로 그 지위를 낮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주체는 단순히 자연의 지배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지배의 대상이다’는 동일성은 추상적 보편성 안에서만 주장되고 추상적 보편성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의 성질뿐만 아니라 자아의 성질도 상실하게 된다. 즉 외적 자연에 대한 지배는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자연도 부정해야 하는 대가”를 치른다.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나타내는 인간 내부에 있는 내적 자연이란 인간의 육체와 환상, 욕구와 감정 등을 의미한다. 자연에 가한 폭력은 이제 인간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왜냐하면 자기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삶의 기능이며 유지되어야 할 무엇도 바로 삶이지만, 지배당하고 억압당하며 자기 유지에 의해 해체되는 것은 바로 생동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에 대한 지배는 내적 자연에 대한 자기 통제, 즉 감성적인 것의 억압, 육체와 본능의 길들임으로 내면화 된다. “노동하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집중된 마음으로 앞만 보아야 하며 옆에 있는 것은 내버려두어야 한다.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충동마저 그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새로운 여분의 노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자연의 지배에 대한 주체의 해방은 인간 내부의 자연에 대한 지배를 동반하기 때문에 다시금 주체를 대상으로 한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중심관은 인간경멸과 자매간이다. 어떠한 것도 공격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하여 마침내 “질(質)을 상실한 자연은 양(量)에 의해 분할된 혼란스러운 단순한 ‘소재’로 격하되고 전능한 자아는 단순한 ‘가짐’(haben), 즉 ‘추상적 동일성’이 된다.”
또한 동일성 사고는 대상을 사고의 개념적 도식과 동일화시킴으로써 그것을 의식했다고 믿는 사고의 갈래이다. 그래서 동일성과 비동일성이라는 문제가 시야에 들어오는 곳은 ‘개념’이 문제가 되는 공간이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개념은 엄청나게 다양한 실재의 대상들을 동일한 용어나 관념 밑에 포섭하는 강력한 동일성의 형식이다. 즉 개념으로 대상을 동일화함으로써 자연을 통일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특수자가 개념이라는 추상적인 보편성 속에 종속되어 특수자에 대한 내용적 규정을 상실하고 특수자의 질적인 면을 기술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개념의 원리인 동일성 원리가 비동일적인 것을 동일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아가 우리가 살펴 보아야할 더 중요한 사실은 개념적인 영역에서의 지배는 실제적인 지배의 토대위에서 세워진다는 점이다.
나아가 아도르노의 동일성 원리 비판은 동일성의 표현형식을 잉태하고 있는 상품교환 사회라는 경제적 체계로부터 이끌어낸 것이다. 이것의 단적인 표현은 다양한 실재의 대상을 가리키는 ‘사용가치’의 억압이다. 다음과 같은 말은 분명하게 아도르노가 맑스의 상품분석으로부터 동일성 원리의 비판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 “하지만 지배적 생산관계 아래서조차 삶이라는 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동일성 아래로 포괄할 수 없는 것이―맑스의 용어로 ‘사용가치’가―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라는 개념에 포섭한다는 점에서 볼 때, 동일성 원리의 유물론적 밑바탕은 상품교환 사회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상품교환 사회는 상이한 대상인 사용가치를 동일한 관념, 즉 가치로서 상품의 동일성이라는 교환가치 밑에 포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객관적 추상화는 학문적 반성보다는 교환법칙 자체의 보편적 발달 속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추상화로 인해 질적 계기들, 즉 생산자나 소비자의 질적 계기, 생산방식의 질적 계기, 심지어는 사회의 메커니즘이 이차적 부산물로 충족시켜왔던 욕구의 질적 계기들은 무시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이윤이다.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그물망이 된 인류, 본래는 욕구의 진정한 주체인 인류는 사람들의 순진한 상상 저 너머에서 사회적으로 이미 짜여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생산력의 기술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뒤엉켜 들어간 경제관계에 의해 그렇게 되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느끼기가 더욱더 어려워진다.

교환법칙 자체의 발달 속에서 객관적 추상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동일성의 모든 표현 형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제적 체계의 제약성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시 상품의 사용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환가치를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사용가치는 단순한 소재적 측면만을 드러내는 것으로 현상될 수 있다. 그러나 상품의 사용가치를 잘 들여다보면 사용가치가 단순히 질료적 형태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생산되는가, 즉 어떠한 생산양식 하에서 상품이 생산되는가에 따라서 사용가치는 경제적 형태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다양한 생산양식에서 빵의 사용가치는 같다. 그러나 빵이 어떻게 생산되는가에 따라서 빵의 사용가치는 다양한 생산양식을 포함한다. “상품의 소재적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생산시대에 공통적일 수 있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고찰은 정치경제학을 벗어난다. 사용가치는 근대적 생산 관계들에 의해 수정되거나 이 생산 관계들에 개입하여 이것들을 수정하자마자 정치경제학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사용가치의 소재에만 집착하는 것은 경제적 형태의 차이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이론적 이해력의 결핍이다. 맑스가 경제학에서 사용가치의 역할을 주장하는 것은 사용가치가 소재적 측면을 갖고 있음에도 생산양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사실 동일성 원리에 포섭될 수 없는 것임에도 동일시된다. 가치로서 상품의 같음이라는 상품의 동일성은 등가성이 전제된다. 그리고 “시민 사회는 ‘등가원칙’에 의해 지배된다. 시민사회는 ‘동일하지 않은 것을 추상적인 크기로 환산함으로써 비교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즉 가치로서 상품은 구별이 없고 균등한 추상적 인간 노동의 결정체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책과 자동차의 비교 불가능한 사용가치 사이에 있는 추상적 보편성으로서 교환가치가 동일성을 출현하게 한 본래의 형식임을 알게 된다.
나아가 상품생산 사회를 이론적으로 나타내는 동일성 원리는 ‘추상적 노동’에서 바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동을 화폐로 환원시키는 것은 상품교환에 들어있는 동일화 과정이다. 여기서 또한 추상적 교환가치는 상이한 노동들과 차이들을 노동시간과 평균화로 되돌리고 상이한 노동의 질적 특수성을 등가성에 복종시킨다. 즉 상이한 노동들 간의 동일성은 상이한 노동들 간의 비동일성을 추상화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인간의 노동을 평균 노동시간이라는 추상적 보편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교환원칙은 동일시의 원칙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상이한 노동들 간의 질적 특수성을 추상적 교환가치가 복종시킨다는 점과 관련해서 볼 때, 보편성을 지향하는 교환가치가 개별자, 특수자, 구체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동일성 원리가 주체와 같지 않은 모든 것을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포섭하여 주체와 같게 만들려는 노력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제 동일성 원리의 기틀인 상품교환 사회에서 추상적 교환가치의 표현형식인 완성형태, 곧 화폐형태가 주체로 등장한다. 따라서 동일성 원리의 핵심적 표현인 가치가 상품교환 사회의 실질적 주체가 될 때, 비동일적인 것을 동일한 것으로 만들려는 주체의 노력은 비동일적인 것의 개별성 내지는 고유성의 억압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동일성 원리와 교환가치의 표현형식인 화폐형태는 다 같이 사물과 인간의 특수한 질들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미 보았듯이 동일성과 비동일성에 대하여 결정적 실마리를 주는 것은 󰡔자본󰡕의 상품 분석에서 말하는 사용가치이다. 동일성 원리가 뿌리박은 곳은 추상적 가치형태인 교환가치를 사회적 지배원리로 등장시킨 상품교환 사회이다. 요컨대, 아도르노의 동일성 원리는 사회적 본보기로서 상품의 교환관계라는 맑스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3. 가치형태의 전개에 나타난 동일성 원리 비판

맑스는 상품 분석에서 동일성 원리란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성 원리에 대한 비판이 맑스가 분석한 상품 교환 속에 들어 있는 교환관계와 어울린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상품」 장의 가치형태의 전개 과정에 나타난 동일성 원리 비판의 관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가치형태의 전개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맑스는 “가치형태의 모든 신비는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있다.”고 한다.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
20자의 아마포 = 1벌의 상의

여기서 A는 B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능동적 역할을 하고, B는 수동적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좌변은 주어이고 우변은 술어이며 등호는 동사(be, sein)이다. 고전 경제학이 ‘상품 A의 가치는 이것 이것이다’라고 할 때, 가치는 실체이며 본질이고 존재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다’가 주어와 술어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됨에도 스스로 존재적인 것을 나타내고 존재로 고정시킨다는 점이다. 이에 관하여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재에 대한 숭배는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인 시장의 우상(idola fori) 덕분에 살아간다. 즉 존재라는 말과 그로부터 추론된 형식들의 어둠 속에서 번성하는 것 덕분에 살아간다. ‘이다’(Ist)는 문법적 주어와 술어 사이에 실존판단(Existentialurteil)의 연관관계를 만들어내며, 이로써 존재적인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가치형태가 존재적인 것을 나타내고 존재로 고정되는 것은 사람들이 ‘가치’라는 말을 믿고 그 말에 따르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말이 뜻하는 것, 즉 개념과 사실의 관계는 생각해보지 않게 되어 상품 A의 가치를 실체 또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품 A의 ‘가치’라는 ‘말’ 때문에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와 일치한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개념과 사물의 동일시가 나타난다.
동일성 기능은 동일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포섭되지 않는 사용가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억압한다. 동일성의 이러한 기능은 관념론에서 동일성 원칙이 단순한 술어적 명제들을 긍정문이라고 일컫는 것과 관련된다. “계사(Copula)는 ‘그것이 다름 아니라 그러하다’(Es ist so, nicht anders)고 말한다. 계사가 나타내는 종합 행위는 ‘그것은 달리 될 수가 없다는 점’(daß es nicht anders sein soll)을 천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20자의 아마포’의 가치가 오직 ‘1벌의 상의’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에도 상품의 가치를 화폐형태로 표현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상품의 가치가 오직 화폐형태로만 나타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상품의 가치가 화폐이고 상품의 가치 표현이 오직 화폐 말고는 달리 될 수가 없다는 점과 관련해서 볼 때, 동일성의 긍정성은 사물에 대한 주체의 적합성이므로 비동일자에 대한 억압적 폭력성이다. “동일성은 그 속에 억압된 사물에 대한 적합성으로서 향유된다. 적합성(Adäquanz)은 언제나 지배의 목표 아래 이루어지는 억압이기도 했고 그런 점에서 자체에 대한 모순이었다.” 가치의 동일성에 상품이 꼭 들어맞기 위해서는 상품의 질적인 특성은 무시되고 자신을 단순히 가치로 표현해야 한다. 여기에는 가치의 동일성을 제1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이렇게 상품의 한 부분만을 나타내는 가치의 동일성 속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은 동일성의 관점에서 본 비동일자”이다. 다시 말하면 상품 A와 상품 B와의 관계는 서로 교환될 수 있기 위해서 같으면서 또한 같지 않아야 한다. 상품 A와 상품 B는 ‘가치’라는 점에서는 동일하고 ‘사용가치’라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여기서 상이성은 ‘A’라는 기호와 ‘B’라는 기호가 기호론상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표현된다. 즉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라는 형식의 동일성 관계는 가치에 있어서 상품간의 양적 동일성과 사용가치라는 상품간의 질적 상이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A와 B는 어떤 점에서는 동일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상이하다.
이제 우리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은 동일성 형식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론적으로 동일성의 억압성은 가치가 단지 여러 가지 조건 또는 관계 아래서 생겨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깨진다. 이러한 인식에서 중요한 점은 개념을 통해 비개념적인 것을 밝히는 것이고, 그것을 개념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동일자·존재자·사실성 등을 제1원리로 삼고 있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원리를 마음에 두고 있는 맑스는 “아마포는 자신의 가치를 상의로써 표현하고 상의는 이 가치 표현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맑스가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의 사용가치에 의해 표현된다고 말할 때 존재는 관계로 변형되며,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용가치가 가치에 비해 우월하며 우선성을 가진다.
이러한 사실에도 서양문법의 계사는 관계를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어떤 상품의 가치가 반대편의 등가물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동일성이 비동일성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동일성 개념의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라는 형식의 동일성 관계가 ‘어떤 조건’하에서 타당한가가 탐구된다면, 동일성 개념은 흥미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성 관계의 조건을 탐구하는 이러한 동일성 개념은 동일한 것과 상이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논의 하고 있는 동일성은 상이한 것 내지 대립적인 것들의 동일성이지 동일한 것의 확인으로서 동일성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가치는 질적인 특성을 필연적으로 무시하는 등가형태를 통해 정의되며 등가형태를 통해서만 존재하지, 가치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이것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는 모든 비밀의 핵심이다. 이 단순한 가치형태의 비밀을 완성된 형태로 나타내는 자본으로서 화폐형태는 본 논문의 주제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상품 A의 가치는 이것 이것이다.’라고 할 때, 가치는 실체이며 본질이고 존재이지만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의 사용가치에 의해 표현된다는 점과 관련해서 볼 때, 가치는 실질적 대상성이 아니고 단지 관계에 의해 생성된 유령적 대상성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이러한 의미를 객체(Objekt)와 대상(Gegenstand)의 구분으로 더 뚜렷하게 한다. 여기서 맑스가 말하는 객체는 실재적 대상(사용가치)이고 대상은 추상적 대상(가치)이다. 그리고 가치는 설명하는 주체에 관심이 있다. 가치가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라 설명하는 주체의 관심을 나타낸다는 것은 가치로서의 주체가 주체에 의해 설명되는 것 내지는 주체와 같지 않은 것, 즉 사용가치를 주체와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리하여 상품생산 사회에서 실질적 대상성은 사용가치의 몫임에도 질적 배제를 통하여 양적 관계를 나타내는 가치가 교환행위를 이끌게 된다. 이렇게 상품을 추상적 노동으로 환원시킴으로써만 가치로서 상품의 동일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가치는 어떤 식으로든 결코 사용가치와 동등화될 수 없다. 둘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든 간에 존재논리적 동일성(seinslogische Identität)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치형태가 보여주듯이 둘 사이에는, 동등한 인간 노동의 대상적 표현으로서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자신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재현관계(Repräsentationsverhältnis)가 존재하는 것이다.”
전개된 가치형태에서는 직접적 교환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등가형태 쪽이 늘어난다. 여기서 상품 A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상품의 무한한 사용가치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한다. 이렇듯, 전개된 가치형태에는 상품의 가치 표현의 갈래가 무한하다. 그런데 “상품 가치의 표현 계열이 무한하다는 사실 속에는, 상품 가치는 그것이 나타나는 사용가치의 특수한 형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맑스는 단순한 가치형태에서 지적하듯이 전개된 가치형태에서도 오히려 가치가 배제하고 있는 사용가치에 마음을 두고 있다. 이는 맑스가 동일성 밑에 포섭될 수 없는 사용가치(타자, 질적인 계기, 차이), 즉 객체에 몰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객체에 몰두한다는 것은 객체의 질적 계기들을 정당하게 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가치형태 분석에서 맑스의 사유가 교환가치의 지배적인 원칙에 동화된 동일성 원리를 꿰뚫어보면서 “개념들에 의해 억눌리고 경멸받고 배척당하는 것들”, “철학에 의해, 우발적인 것으로서, 무시할 수 있는 양으로 격하된 질들”에 대한 관심, 즉 차이를 포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맑스의 이러한 관심은 가치로서 상품의 동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다. 맑스의 이러한 철학은 철학의 실현을 위한 경제학의 연구와 결합되고 있다.
맑스는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상품 A의 가치는 이것 이것이다’라는 생각을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의 사용가치에 의해 표현된다.’고 바꾸어 말함으로써 가치는 존재에서 관계로 형태가 달라졌고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사용가치가 가치에 비해 앞서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있지도 않은 의미되는 것으로서 가치를 미리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주어와 술어를 뒤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주어와 술어 자체를 파생시킨 문제, 즉 가치가 생긴 본 바탕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맑스가 전개된 가치형태의 전도로서 일반적 가치형태를 앞의 두 형태(단순한 가치형태와 전개된 가치형태)와 비교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앞의 두 형태는 단 하나의 다른 종류의 상품이든 그 상품과 다른 수많은 상품의 계열이든 상품 하나씩의 가치를 표현한다. 어떤 경우이든 모든 개별 상품이 자신에게 한 가치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말하자면 개별 상품의 사적인 일이었으며, 개별 상품은 다른 모든 상품의 도움 없이 이 일을 해 낸다. 다른 모든 상품은 그 상품에 대하여 등가물이라는 수동적 역할만을 한다. 반면 일반적 가치형태는 상품세계의 공동 사업으로서만 성립한다. 한 상품은 동시에 다른 모든 상품이 동일한 등가물로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새로 등장하는 상품 역시 이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 가치 표현을 획득하게 된다. 이리하여 모든 상품 가치의 대상성은 이러한 물건의 단순한 ‘사회적 존재’일 뿐이므로, 그 가치는 상품의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 형태는 사회적으로 유효한 형태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와 함께 명백해진다.

맑스가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말하는 ‘상품의 전면화된 사회적 관계’는 교환과정의 모든 면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환과정이 온통 현실적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화폐를 전제한다. 화폐형태가 일반적 가치형태와 갈라지는 점은 아마포 대신 금이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했다는 것 말고는 없다. 상품세계의 가치 표현에서 금이 보편적 등가의 기능을 독차지하자 비로소 금은 화폐상품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금은 처음부터 초관계적 실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화폐상품은 상품들 사이의 서로간의 관계와 상품이 표현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폐는 관계 맺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면, 상품들 중 하나였던 금이 화폐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마치 화폐가 금 자체의 내재적 성질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화폐가 생긴 본바탕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일반적 등가물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지 못하고 일반적 등가물의 끝마침에서 시작하는 데 있다. 요컨대, 화폐의 마술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뒤바꿈이며 관계와 실체 사이의 뒤바꿈이다.
이렇게 볼 때, 화폐의 마술은 등가 형태의 기준이 외부에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상품의 관계를 맺어주며 모든 사물 교환의 잣대인 화폐는 다른 것과 비교될 필요 없이 그 자체가 바뀌지 않고 오래오래 가야하고 직접적인 자기동일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자기동일성은 화폐의 생명이다. 이를 위해 화폐의 마술은 화폐라는 유령을 불러냈다.

다른 상품들이 각자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어느 한 상품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비로소 화폐가 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그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그 한 상품으로 각자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표시하는 듯이 보인다.……이 물품들[곧 금과 은]은 그것들이 대지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 화신(化身)이다. 그리하여 화폐의 마술이 생긴다.

상품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결과인 화폐가 등가적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면, 화폐의 탄생은 흔적을 감추어 버리고 마치 경제적 관계를 초월하는 원인으로서 윗자리에 앉는다. 이러한 화폐의 속임수, 즉 관계와 실체의 뒤바꿈은 “그것은 화폐이다(es ist Geld)”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맑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화폐는 상품으로부터 생성 또는 형성된 것임에도 그렇게 나타나지 않고 처음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반적 가치형태는 노동생산물을 차이 없는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결물로 드러낸다. 그리하여 상품가치에 대상화된 노동은 모든 현실적인 노동을 일반적 가치형태라는 추상화된 인간노동으로 환원시킨다. 이렇게 인간의 노동을 평균 노동시간이라는 추상적 보편개념, 즉 교환가치로 환원시키는 교환원칙은 동일화의 원칙이다. 물론 같은 상품들간의 교환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교환은 사용가치의 이질성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화폐의 자기동일성의 유지를 위해서 상품의 이질성 자체의 모순적 규정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을 통하여 상품이 교환될 때, 교환의 잣대인 화폐형태는 질적으로 특수한 상품들이 교환에 있어서 양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나아가 화폐의 자기동일성 유지와 확대는 현실적인 계급 관계의 성립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생산 활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 즉 화폐소유자와 화폐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의 사회적 관계의 내용은 경제적 관계 자체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일반적 가치형태와 화폐형태는 단순한 가치형태가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화폐형태는 실제의 사회적 교환과정을 나타내고 자본주의의 실제적 현실을 드러내 보인다.
자본주의의 실제적 현실을 드러내는 화폐형태는 자신의 사용가치를 잃어버려야만 상품들간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가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여기서 화폐의 자유는 사용가치의 억압이다. 왜냐하면 화폐형태에서 사용가치를 배제하는 것은 상품으로서 특수성과 질료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사용가치의 배제는 화폐가 상품세계의 안쪽이 아니라 상품 세계의 외부를 의미한다.
여기서 상품세계의 외부는 구조이고 제도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보편적 교환관계 속에서는 모든 질적 계기들이 똑같은 것으로 평준화되는데, 이 질적 계기들의 총괄개념이 구조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좌변과 우변은 능동과 수동의 역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상품들의 서로 서로 간의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이질적인 두 항 사이의 뒤바꿀 수 없는 관계는 자본주의 제도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하여 가치로서 굳어진 화폐는 모든 상품들 윗자리에 앉아 모든 상품들을 거느린다. 이것이 사회적 지배의 논리를 뜻하는 가치의 자기동일성 원리이다.


4. 나오며

자본의 가치증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과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팽창’, 즉 가치의 동일성의 유지와 확장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오늘날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자본의 초월적 권력 아래서 부정되고 소멸되는 전지구적 자본화의 강화와 확장을 가혹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해외자본의 국내유치와 지배, 이른바 ‘자본의 세계화’는 우리의 대지에 ‘빈곤의 세계화’라는 씨앗을 뿌리면서 변화시킨다. 인간과 자연의 생존은 자본의 이윤추구라는 가치와 교환되므로 그 가치에 복종하는 한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이 초월적 권력의 폭력적 힘은 “이미 많은 피를 흘린 환자를 치유한답시고 죽을 때까지 더 많은 출혈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환의 원리가 철저하게 관철되는 사회에서 절망은 인간의 가치이며 희망은 자본의 가치이다.
모든 것들의 교환을 위해 가치의 동일성이라는 유령을 불러낸 자본주의는 이 유령을 다시 하데스가 지배하는 세계로 데려갈 수 있는가? 가치의 동일성에 대한 부정은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치의 동일성의 부정은 곧 자본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치의 동일성에 대한 비판을 다음과 같은 맑스의 명제로 요약하고자 한다. “인간이 천시되는 존재, 노예화된 존재, 버림받은 존재, 그리고 경멸받은 존재가 되는 그러한 모든 상황을 전복시켜야 한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의 실천적 전복, 즉 존재의 경제학과 존재의 미학의 아름다운 결혼은 우리에게 얼마동안 시지프스의 삶을 요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참된 현실을 찾고 또 찾아야만 할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가능성의 세계를 기대하고 희망하며 지향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거나 현재 상태의 인간일 뿐만 아니라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이기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희망하는 이곳에서 “통곡의 골짜기”에 대한 실제적 비판이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는 현실적인 문제의 본질을 찾기 위해 철학적 지(知)로 파고들어 동일성 원리의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의 이론적 조건을 발견하고, 다시 동일성 원리를 지양할 현실적 조건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상품 분석을 통하여 동일성 비판을 수행한 추동력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맑스를 불러낸 것은 “죽은 자들의 유령이 다시 배회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혁명의 정신을 재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열정과 활동의 본질은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을 지양하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진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2008-06-20 16: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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