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중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대 쟁점이라 할 수 있는 한미 FTA 협상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그간 발언해온 많은 학자들이 미필적 외면 내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연구자들의 이러한 침묵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이는 이들 학자들이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함수에 대해 대단히 둔감함을 잘 보여준다. 아니 이들에게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의 동태적 관계는 아예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런지도 모른다. 이미 1989년 말, 경제위기론에 이은 3당 합당, 1997년 OECD 가입 및 세계화 논의에 이은 IMF 경제위기, 그리고 이번 사례처럼 생뚱맞게 사회양극화론에 이은 한미 FTA 체결 움직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변수 간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미 FTA 체결 자체가 미칠 한국 사회에 대한 가공할 파괴력 및 사회경제구조의 성격 변화가 일차적으로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변화를 정치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한미 FTA는 단순히 반미 내지 민족주의적 담론만으로는 담아 낼 수 없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자본의 세계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미 제국의 등장 과정 등 냉전 질서의 해체 이후 국제정치의 변동과정을 그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단지 문자 그대로 ‘경제자유무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한미 FTA 사태를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자본에 의해 줄곧 지속돼 온 구조조정의 정치의 완결판에 해당함을 역설하고자 한다. 나아가, 한미 FTA가 야기할 가장 중대한 정치적 문제가 주권의 훼손임을 국가의 독자적인 사회경제정책 능력의 상실과 이로부터 야기되는 공공영역의 파괴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통해 고찰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한미 FTA 저지 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제국의 일방주의적 통치와 공화국 민주주의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배세력의 성격변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두 개를 따로 분리하지 말고 가급적 하나의 개념어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뜬금없이 웬 공화국이냐는 의문 내지 반론이 있을 수 도 있겠다고 판단하여 그 의미에 대해 간략히 적시하고자 한다. 공화국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차용한 이유는 한미 FTA를 통해 발현된 현재의 정세를 세계사적 전환이라는 정치사상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먼저 공화국은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냉전체제의 해체이후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에 따른 다른 나라들에 대한 거의 포고령 통치에 준하는 군사, 정치, 경제적 개입과 주권 침탈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개념 장치다. 제국은 불특정 다수 그리고 국가 형태를 가리지 않고 ‘우적관계’로 호명한다. 현재의 국제정세 하에서라면 북한, 이란, 이라크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악의 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과의 대적 상황에서 정치학자로서의 필자는 주권국가 형태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초국적인 정치적 대항구조를 상상하기 힘들다. 아니 솔직히 표현한다면 기존의 주권 개념을 담아내지 못하는 국가 개념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다만 제국 지배라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정치적 저항의 양식은 기존의 민족주권 개념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단순히 대외적 독립성의 유지라는 측면이 아닌 국가 그 자체를 민주주의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정치운동의 관점에서 기존의 주권 개념의 이론적 전환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권이 아닌 공화국 주권이며, 단순한 국가주권이 아닌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는 대중적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공화국 민주주의라고 개념화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하의 논의에서 고찰하겠지만 한미 FTA의 문제는 주권의 문제와 노동자․민중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기각하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착종되어 표현된 대표적 사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화국 민주주의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지배에 따른 주권의 문제와 대내적으로 한미 FTA 저지를 통해 국가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이중적 정치동학의 문제의식을 개념화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가급적 ‘한국’의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은 이유 역시 현재의 한국의 국가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노동자․민중에게 대단히 불비할 뿐 아니라, 이후 새롭게 구성될 국가 역시 혈연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는 한국이라는 국적성보다는 도달해야 할 정치적 목표를 적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화국 내지 공화국 민주주의 개념을 차용함을 밝혀둔다.


2. 구조조정의 정치로서 한미 FTA: 87년 체제의 해체

한국 민주주의 연구에서 사회경제적 변수가 배제된 일차적 원인은 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있다. 80년대 지상과 현장을 달궜던 사회구성체 논쟁은 종결되었고, 이로부터 사회계급론에 기반 한 민중민주주의 등 급진적 사회과학에 대한 구상 역시 유보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기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계급적 민주주의론을 대체한 것이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식의 ‘시민사회론’이었다. 시민사회론이 대체로 사회경제적 변수를 민주주의의 함수로 고려하지 않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최근 한미 FTA에 연한 정치적 담론 정국을 볼라치면, 80년대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 이후 좌파 사회과학, 특히 좌파 정치학의 극적인 부활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사회운동진영은 한미 FTA 공방전에서 정치적 담론을 선점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회경제적 변수, 구체적으로 사회계급적 변수가 이론적, 경험적으로 한국 사회과학에 진입한 것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이른바 ‘87년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강력한 노동운동의 등장과 정치적 공간의 일정한 개방이라는 조건 속에서 모색된 지배세력의 대사회지배 전략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성립을 통해 지난 50년간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구체제’와는 다른 몇 가지 새로운 정치-사회적 변화가 발생했다. ‘87년 체제’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의 중간계급이 이제 더 이상 민중운동세력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시 말해서 ‘민주와 반민주’라는 정치적 대립구도가 시효 만료되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80년대 중반, 저항정치의 와중에 발생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위기와 ‘87년체제’의 성립은 한 측면에서는 한국사회의 전후 지배구조에 파열구를 냈다는 면에서는 성공한 민주화 투쟁이었지만, 동시에 지배계급이 지배전략의 변화를 통해 파열지점을 신속히 복구한 측면에서는 결과적으로 해방이후 처음으로 세력균형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배세력의 전략변화는 민주화 운동의 성격과 그 주체 변화에 영향 받은 것이었다. 1987년에 전개된 6월 항쟁을 비롯한 노동자 총파업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은 향후 민주화 과정의 성격이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 또는 국가의 민주화로부터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심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이에 비례하여 정치-사회적 대립 역시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적 운동세력과 자본 간의 대립이라는 좀더 분명한 계급적 대치선을 따라 형성될 것임을 예측가능하게 해 주었다. 노동자 계급운동의 성장은 동시에 지배계급 공세의 화력이 누구에게 집중될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지배계급과 노동자 운동을 위시한 민중운동 세력은 10여 년간 밀고 당기는 끊임없는 힘의 대결을 펼쳐 왔지만, 이러한 ‘87년 체제’를 뿌리 채 흔들어 버릴 일차적 충격파는 어이없게도 외환위기(外換危機)라는, 말 그대로 외환(外患)을 통해 찾아왔다. 전례 없는 금융공황을 통해 조성된 일련의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은 지배계급에게는 국제 금융자본의 힘을 빌려 87년 체제를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내용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구체제 질서로 회귀시켜 줄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으며, 김대중 정부 역시 이러한 역할을 자임했다. 김대중 정부가 IMF 구조조정 패키지에 따라 충실히 수행한 정책들은 정치적 민주주의 공간의 개방은 일정 정도 용인하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철저히 배제하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전략구도와 대부분 합치했다. 이런 한에서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노무현 정권은 최근 참여정부의 정치적 정체성을 좌파신자유주의로 규정했다. 정치학자들도 무색하게 만들 만큼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좌파신자유주의라 함은 다른 말로 급진적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급진적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새처 정권을 필두로 한 이른바 80년대의 신우익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어떤 측면에서 이러한 급진적 신자유주의 면모를 드러내려 하는가? 그것은 바로 80년대 말의 경제위기론 및 90년대 말의 IMF 경제위기에 이은 한미 FTA를 통한 구조조정의 정치학을 완결하고자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주지한대로 한국에서 구조조정의 정치는 다름 아닌 87년 체제의 끊임없는 해체시도 및 이에 연한 자본의 반격 시도로 규정할 수 있다. 요컨대, 한미 FTA 체결시도는 경제위기론과 3당 합당, IMF 경제위기를 통한 정리해고 등 노동자, 민중의 사회적 권리의 해체시도에 이은 자본의 영지를 재탈환하고자 하는 반혁명 3부작의 완결판인 것이다. 한미 FTA는 결과적으로 자본의 반혁명 시도가 현상한 것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노동자, 민중 세력의 각고의 투쟁을 통해 그나마 확보된 민주주의적 공간의 완전한 해체로 귀결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한미 FTA의 체결 성사 자체의 여부를 떠나 자본의 반혁명 시도는 다양한 구조조정의 정치 형태로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도발될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이며, 87년 체제의 성립과 그간의 경과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 타깃은 바로 노동자, 농민이다.
한편, 한미 FTA 협상 및 체결시도는 그간의 구조조정의 정치에 비해 그 자체로 상당한 정치적 특이성을 지닌다. 자본과 정권은 한미 FTA를 단군 이래 최대의 협상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제대로 된 대외협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러한 수사적 과장의 이면에는 그만큼 한미 FTA가 한국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킬 것임을 지배계급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현재 한미 FTA 체결 시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정치적 특질을 지니는데, 무엇보다 이처럼 불평등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움직임 그 자체는 이미 그동안 구조조정의 정치로 요약되는 자본의 반혁명 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은 그 본성상 그 어떤 사회경제적 제약 및 규제도 없는 완전한 영업상의 자유를 목표로 한다. 한국 자본은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독점적 형태를 완결 지으며 국가권력과의 역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민주적 정치공간이 개방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다양한 사회민주세력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절대적 힘은 증대했겠지만, 계급적 힘 관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자본의 상대적 권력은 노동의 그것에 비해 그 이전보다 약화되었다고 해야 하겠으며, 더구나 국가권력 역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노골적 특혜와 벌거벗은 폭력에 의한 자본 일변도의 정책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게 87년 민주화 이후에 자본에게 펼쳐진 새로운 정세 변화의 기본 성격이었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의 IMF 경제위기에 이은 구조조정의 정치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으나, 정치적 경쟁, 곧 선거정치의 불확실성에서 야기되는 두 차례의 연이은 반대파의 집권은 자본에게 어딘지 모르게 불안을 가중시키는 압력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치적 불안과 사회경제적 신정세에 대한 자본의 불만이 투자거부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권기를 통해 이러한 자본의 사보타지는 극에 달했다. 고용 없는 성장, 부의 가일층의 역진적 분배 양상, 이로부터 파생되는 중산층 해체와 극심한 사회양극화 양상의 전개, 청년실업의 급증 및 대중빈곤의 심화과정은 근본적으로 자본의 투자거부의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선택의 강요, 자본의 압력 및 태업 양상에 대해 노무현 정권의 선택지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자본 태업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는 그동안 입안된 신자유주적 사회경제 정책의 컨셉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공공영역을 활성화하는 식의 사회진보적 정책을 도입하거나 아니면 자본의 요구에 순순히 굴복하기보다는 아예 선도적으로 그 활로를 개척해줌으로써 이후 자본과의 정치협상에서 일정한 지분을 획득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한미 FTA 체결 시도는 후자의 노선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미 FTA의 경우, 기존의 구조조정의 정치학과는 다르게 국제관계적 특징, 곧 협상 상대방이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헤게모니 국가이자 사실상 전 지구적 규모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으로 정해짐으로써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비유컨대, 한미 FTA는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을 앞에 두고 벌어진 조선지배계급의 대응양상과 대단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혁명적 사태에 처한 조선의 봉건지배계급의 대응 방식이란 농민혁명으로 폭발한 사회경제적 구습을 타파하는 급격한 사회경제개혁의 정치를 시도하거나 아니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정치적 위기를 일단 수습함으로써 구질서를 유지하는 식의 미봉책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조선의 지배세력은 후자의 길을 택했으며, 이러한 사태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기는 발단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결국 한미 FTA가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전의 구조조정의 정치와는 달리 주권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외적 주권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통해 이미 내준 터에 사회경제적 국가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로서의 실질적 주권마저 이번 한미 FTA를 통해 심각히 손상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역사적 경로에 접어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3. 주권양도협정으로서의 한미 FTA: 민주주의의 위기

한미 FTA는 공화국 주권을 미 제국에게 실질적으로 할양․양도하고자 하는 주권반환 협정의 성격을 지닌다. FTA가 아니라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근대주권국가의 배타적 독점권에 속해 있던 각종의 권한을 침식해 왔고, 또 WTO등과 같은 초민족국가적인 제도 혹은 거버넌스에 그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해 왔다. 또한 IT산업과 운송수단의 혁명적 발전은 전통적인 국경개념을 무색하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자체가 존속되지 않고 국가가 유지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는 주권의 족쇄로 작용한다.
한미 FTA를 액면 그대로 규정하자면 포괄적 경제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47년의 GATT 체제에 규정된 FTA의 경우 기본적으로 ‘관세’를 중심으로, 그 대상인 ‘상품무역’을 자유화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즉 ‘통상 교역’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상품인 것이다. 반면 1990년대 WTO체제에서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이미 WTO협정에서 이른바 ‘무역관련(trade-related)’이란 신종 개념을 통해 투자(TRIMs:무역관련 투자조치협정)와 지적재산권(TRIPs: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이 여기에 포함되었고, 또 당연히 농산물도 이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제국 발 FTA는 고전적 FTA와 달리 그 규율대상이 상품에 대한 관세에 그치지 않고, 공공영역, 투자, 금융서비스 등 BIT를 포함, 경제활동의 전 영역을 포괄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미 FTA는 말만 다르게 할 뿐 사실상 ‘한미경제통합’과 같은 실질적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 FTA는 공공영역에 대한 공격을 담고 있다. 한미 FTA의 공공성에 대한 공격은 특히 에너지, 교육, 의료, 문화 등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FTA에 의한 공공영역의 사유화 내지 전면적 상품화 과정은 사회경제적 정책을 독자적으로 입안할 수 있는 정당성 기제로서의 민주적 정치위임의 심대한 손상을 초래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및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통일성을 심각히 해체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공화국의 권리는 그 힘에 비례하며, 이러한 힘은 주요하게 공공영역을 어떻게 관할할 것인가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공화국에서 인민이 통치위임을 국가권력에 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생존과 사회경제적 삶이 그러한 정치행위를 통해 보장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은 공공영역을 민주주의 정치기제를 통해 인민의 위임을 받아 행사하는 고유한 사회경제적 정책적 기제 내지 사회통합의 정책적 지렛대로 사용한다. 같은 이유에서 1987년 제정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서조차 국가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의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 달성 등을 위해 필요할 때 경제 규제와 조정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공공영역 등을 통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정책행위는 고유한 대내적 주권 행사에 해당하며, 이러한 정책적 행위를 실효성 있게 달성하기 위해 최소한 식량, 물, 전기 및 에너지, 통신, 교육 등 공공영역을 국가가 민주적으로 관장하는 일은 국가가 하는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일이라 하겠다. 식민지가 어디 따로 있는가? 민중 생존의 기본에 속하는 이러한 재화의 사유화 및 상품화가 진행되고, 게다가 그것의 통제권이 초국적 독점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생존을 미 제국의 통치권에 저당 잡히는 참혹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는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의 헌법보다는 미국 자본의 경제적 이해와 이윤추구의 욕망이 상위에 놓이고 그 사법적 관할권에 있어 미국의 의도가 유력하게 관철되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사회적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명약관화한 일로 이미 이러한 사태는 NAFTA 10년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NAFTA 10년이 북중미 세 나라에 공히 어떤 파괴적 영향을 미쳤는가를 기록한 미국의 시민단체 ‘Public Citizen’은 NAFTA를 주권과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트로이 목마라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가리개 뒤에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정책들이 우리의 시야와 통제를 벗어나 결정되는 전적으로 반민주적인 시스템이 숨어 있다. 1993년 NAFTA에 관한 논쟁이 진행될 당시, 어느 누구도 이 “자유무역”협정이 서명국이라면 반드시―설사 국회나 입법부가 NAFTA의 그 정책을 반대한다고 해도―국내법이 따라야만 하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비교역 정책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깨닫는 사람은 없었다. NAFTA는 국내 육류와 생산안전, 검역, 환경보호, 서비스 부문 규제, 투자와 개발정책, 그리고 수많은 미국산 제품 구입금지, 정부조달 등에 관해 제한을 두고 있다. 게다가 NAFTA는 국내 규제 외에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권한을 가진 십여 개의 비공개 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공개적이어야 하고 공공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했다. NAFTA의 막대한 규정은 강력한 무역재판소에 의해 집행되었다. 그러나 이 무역재판소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마저도 결여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미국 법정 외부에서 운영되고 있다. NAFTA의 무역재판소 시스템은 외국기업이 비공개의 무역재판을 통해 정부를 고소하고 현금보상―대부분이 납세자들의 세금으로부터 온―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NAFTA가 외국기업들에게 보장해 준 새로운 권리와 특혜를 사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미 이 시스템 아래서 총 140억 달러 보상을 요구하는 20개의 사건들이 접수되었다. 환경 보건 규제가 종종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잘 알려진 세 건의 사례에서 공공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기업들은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수백만 달러를 받아냈다. NAFTA는 각 국의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통제마저도 제한을 가하고 있다. 한 국가의 천연자원에 대한 일정량을 다른 국가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비례 할당”조항이 그 예이다.

NAFTA는 정확히 한미 FTA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한미 FTA는 노동자, 민중의 오랜 각고의 투쟁 끝에 이나마 쌓아올린 공화국 민주주의의 위기 및 주권 상실이라는 심각한 정치적 파국을 몰고 온다는 면에서 그 파장을 가늠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세계사적 시간대의 측면에서 한미 FTA 저지투쟁은 민족과 반미를 횡단하여, 제국 통치령에 맞서 공화국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 농민을 위시한 민중의 민주주의적 항쟁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4. 결론에 대신하여

지금까지의 분석으로부터 한미 FTA에 연한 한국 정치의 변동양상에 대한 몇 가지 예측이 가능하다.

1) 한미 FTA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무엇보다 온건 개혁 내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해체 및 분열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제도권 정치에 있어서는 열린 우리당의 분열 및 해체로 귀결될 양상이 농후하다. 향후 내년 대선까지의 정치 일정에서 중대한 정치, 사회경제적 이슈로 기존의 정치세력이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계기란 북한 문제 및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이른바 안보이슈와 한미 FTA 외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중대 이슈에 대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의미 있는 정치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무망해 보이며, 바로 이러한 무대응, 무능력은 5·31 지방선거 참패를 통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와 노무현 정권의 핵심적 사회경제적 정책은 친미 내지 종미노선을 추종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독트린을 신앙처럼 받드는 새로운 경제기술관료들에 의해 완전히 주도되고 있는 상태다. 이들 신흥지배엘리트들, 곧 신자유주의적 경제기술관료집단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이전의 지배엘리트들과는 그 질을 달리할 정도로 진화해왔으며, 심지어 일정한 돌연변이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지배구조가 IMF 구조조정기를 통해 주주자본주의로 급속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들 신흥 경제기술관료들은 그들 스스로 국가의 최고위 내지 핵심적 정책결정자임과 동시에 자본의 일정 지분을 지닌 주주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배당받았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맞긴 격으로, 국가의 경제위기가 이들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불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최상위 그룹을 차지하며 매년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수 십 억 원대의 재산을 불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내밀한 비밀은 부동산정책 담당자들 및 유관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강남불패 신화의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들 신흥경제기술관료들에 의해 주도될 사회경제정책의 친자본적 성격 및 경제적 자원배분의 반민중성이란 구조적으로 사전에 이미 거반 결정 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공기업 민영화 및 해외 매각 등 공공영역의 파괴를 예사로 여김으로 공화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신흥경제기술엘리트들이 그 마지막 걸작품으로 한미 FTA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신흥경제기술엘리트의 정치경제적 권력을 환수하고 사회경제정책의 방향을 급격히 전환하지 않는 한 공화국 민주주의는 한 순간도 휘어진 허리를 필 수 없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제기술관료들이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정치적 권력을 한 손에 응집할 수 있었던 계기란 IMF 당시, 대우자동차를 포함하여 수백조원에 해당하는 소위 ‘부실기업’을 매각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며, 또한 부실기업을 새롭게 매입한 자본에게 수지를 마쳐주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150조원 가량의 공적 자금을 처분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던데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IMF 경제위기의 시대가 거꾸로 이들에게는 엄청난 권력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정권의 실질적 대통령은 노무현이 아니라 미국의 투기자본을 포함한 세계 초국적 자본 일반과 한국자본의 가교 역을 담당해온 한국의 신흥경제기술관료를 상징하는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집단지도체제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최근 론스타 매각과정에서 이들의 활약상을 보라. 만 3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4조 5천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한국의 산업, 금융, 재정,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이헌재 사단의 개입 없이 이게 가능할 법한 일이란 말인가? 과거 교과서 같으면, 이 같은 집단을 매판관료라고 불렀을 법도 하겠지만, 이들은 철저히 합법적으로 자본의 유통을 처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 관련 각종 법령을 만드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와 경제를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쥔 이들의 권력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하나회 등과 같은 정치군인들의 그것에 비견될만하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통한 친미신자유주의적 경제기술관료들의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 응집기능 덕에 역설적으로 역대 정권 가운데 유일하게 레임덕을 경험하지 않는 정권으로 기록될 일이지만, 여당임에도 유력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없는 최초의 정치적 불임정권으로 기억될 가능성 또한 높다. 이는 결국 열린 우리당의 내적 분열 및 해체를 가속화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진보적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

2) 현재 한미 FTA 체결 저지를 주도하는 진보적 사회운동 세력의 향후 정치적 향방은 해방 이후 최대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이러한 집결 양상이 무엇 때문에 가능했나를 이해한다면 대체로 그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87년 민주화 투쟁 당시 국본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87년 당시의 국본 역시 현재의 범국본처럼 전국의 정치사회운동 단체가 총망라되긴 했지만, 그것의 최소 목표는 직선제 개헌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라는 정치영역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범국본은 그것을 넘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진보적 제 정치사회운동세력은 한미 FTA 저지를 넘어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주권의 상실과 이로부터 야기될 공화국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의 사회경제 그 자체를 재구조화 하는 정치운동으로 전환 내지 재편의 필요성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미 FTA저지 투쟁을 계기로 종미(從美)적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선에 전면적으로 대항하고 그것과 배치되는 사회경제적 정치노선을 제시하고 미국의 한반도 전쟁기지화 기도 반대 및 남북한 민중의 자주적 노력에 의한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방도를 구체화하는 계기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3) 2007년 대선은 한미 FTA의 성사여부 그 자체와는 별도로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경제적 이슈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형태의 보혁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제국과 공화국 사이의 투쟁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친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지배동맹 세력과 반제 사회민주주의를 기치로 하는 폭넓은 사회진보연합 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을 외형상 주된 대치선으로 하겠지만, 이는 사실상 87년 체제의 전환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이라는 사회계급간의 대회전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