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숙인의 발생 배경과 사회적 인식

1) 1998년, 노숙인 문제의 발생 시점

1998년은 IMF사태로 인한 대량실업과 노숙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98년을 기점으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등 전국 5대 도시의 철도역 주변으로 몰려든 노숙인은 “쏟아져 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가히 폭발적인 증가 양상을 보였다. 아래 표에서도 보듯이 1997년과 1998년 1년 사이에 노숙인 숫자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표 1> 1997년-1999년 노숙인 현황
구분1997. 121998. 121999. 21999. 51999. 7비고노숙인 수5986,1006,2005,5005,400부랑인 시설
(14,000명)
쪽방(10,000명)쉼터노숙인-4,6005,8004,8004,700거리노숙인-1,50 0400700700

노숙인 사태와 대량실업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노숙인 문제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한국 경제난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숙인은 IMF사태에 따른 대량실업난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사회 현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응급보호 차원에서의 급식서비스와 쉼터 개소를 통한 잠자리 마련, 그리고 상담서비스를 제공하여 조만간 가정과 사회로 복귀하도록 지원해야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감대 위에서 정부와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간의 지원 그룹들은 단시간에 노숙인을 위한 숙소(쉼터)설립, 급식제공, 상담지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공공근로사업에의 참여 등 일련의 응급 구호적 성격의 보호․지원체계를 빠른 속도로 수립하게 되었다.

2) 노숙인의 발생 배경과 인식 차이에 따른 문제점

노숙인 문제는 IMF사태에 의한 대량실업난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 파악되었으나 IMF 경제위기가 지나가면 노숙인 숫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노숙인의 발생 배경과 원인, 정부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국 IMF사태를 통해 드러난 노숙인 문제를 통해 불안정한 주거 상태에서 불안정한 노동형태와 불안정한 고용조건에 있는 빈곤 계층은 이미 한국사회에 폭넓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즉, 빈곤 계층의 빈곤을 더욱 심화시키는 실업, 저임금구조를 강제하는 경제 구조와 저렴한 주택의 절대부족이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거리생활까지 하게 하는 노숙인을 계속해서 양산하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림 1> 노숙 경로

불우한 성장배경
Unfortunate growth background →연소 취업
early employment→불안정한 고용구조에 편입
the entry of an unstable employment system→-경제적 자원의 결핍
lack of finacial surport financial
-부모의 이혼, 사망
Divorce or death of parents
-가정 폭력, 아동학대 Domestic
violence and child abuse-가출및 청소년 비행
Runaway or juvernile juvenile
delinquency
- 저학력 및 인적자원 투자 결핍
low scholarship or lack of
investment of human resource-저임금 low wage
-임시, 일용직 temporary job
-영세 자영업, 서비스업종
a petty self -management 취약한 가족 구성
weak family structure→ 외부적 충격 혹은 사고
an external shock or incident→ 노숙생활로 전락
Fell into the homeless-불안정한 결혼 생활
unstable marrage life
-독신생활 a single life
-비정상적인 주거생활
abnormal residential life-해고(실직) layout lay-off
(unemployment)
-사업 실패 fail of business
-이혼, 별거, 배우자 가출
divorce, separation, runaway of a spouse

그러나 민간 지원그룹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정부는 정책적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숙인(露宿人)’의 의미를 1998년 당시나 현재나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거리 노숙인과 정부로부터 인가 받아 지원을 받는 노숙인 쉼터 생활자로 매우 좁히고 있다.
수구 보수 언론 또한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게으른 자, 부랑자 등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켜 오히려 IMF 당시의 실직 노숙자라는 온정적 이미지(?)마저도 후퇴시켜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으로도 소위 걸인이라 부르던 부랑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국적 사회적 분위기 등도 문제이다. 이러한 점들은 노숙인에 대한 지원을 가치 없는 예산으로 생각하게 하여, 예산을 점점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거리 아니면 쉼터 생활자”라는 단순화된 접근은 쪽방, 여인숙, 만화방, 지하 월세방 등에서 생활하거나, 친척이나 지인들의 집에 일시적으로 얹혀살면서 상황에 따라 비정규․비공식노동에 종사함으로써 극도로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광의의 홈리스 생활을 선택해야 하는 ‘잠재적 노숙인구’들을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다. 노숙인에 대한 협소한 접근은 결국 정부가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하고 획일적이며 단기적인 정책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노숙인 문제를 과소평가하거나 정책방향을 눈에 보이는 노숙인에 대한 대책만으로 한정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며, 결과적으로 그 대응책은 “잔여적(殘餘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편적인 주거보장이나 공공부조제도, 자활사업 등 일반적인 저소득층에 대한 대책과의 격리를 초래하는 한편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써 대 빈곤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못하는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2. 노숙인에 대한 공적인 지원체계 진단

노숙인 지원체계는 응급구호서비스 제공과 체계구축의 측면 즉, <거리를 중심으로 한 현장지원체계>, <쉼터지원체계>, <쉼터 등의 시설 퇴소 이후 지역사회 재정착을 위한 주거지원체계>로 그 전달체계는 잘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각 전달체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적․물적인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내용적으로 빠져있어 사실상의 시설수용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재정착과 탈(脫)노숙을 위한 통로가 사실상 막혀있어 노숙인구를 거리로 몰거나 쉼터로 모는 식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극명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그림 2> 공식적인 노숙인 보호․지원체계
노 숙 인▼
상담보호센터
(분류․사정, 생활편의, 일시보호, 거리상담 outr each)
◀쉼터 및 시설입소거부
▶거리노숙인
(이용시설, 거리진료소, 급식소, 쪽방 등 이용)▼▼ ▼전문쉼터
(단기보호, 재활․자활지원)
최장: 1년 6개월◀▶부랑인복지시설
(부랑인 장기보호, 재활․자활지원)▶타사회복지시설
(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인 등)▼ ▼ 자활의 집 및 주거지원
(전세자금 지원)
최장: 4년▶사 회 복 귀◀
자료 : 보건복지부 복지자원정책과, 2005년

특히 현재의 노숙인 지원체계는 응급구호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용과 의식주 해결이 중심이 되어버린 쉼터 위주의 보호 중심으로, 공공근로사업이나 일자리 제공도 쉼터 입소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시설이용과 수용을 위한 정책에서 진전이 없다는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한편으로는 노숙인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맞물려 일하지 않는 노숙인을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불필요한 과잉서비스 논란을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먹여주고 재워주는 쉼터가 있는데 쉼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식으로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기제로도 작용한다.
결국 노숙인에게 특혜나 유별난 배려를 제공하는 조치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기회와 권리를 ‘노숙인이기 때문’에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주거와 의료, 노동․고용프로그램으로의 수렴과 연계로 이어질 수 있는 대빈곤정책 차원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거리>에서 <쉼터>, <쉼터>에서 <쉼터 등의 시설 퇴소 이후>로 구축되어 있는 공식적인 전달체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적․물적인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사실상 수용위주의 정책은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로 이어져서 노숙당사자의 자립의지와 자존감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3.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향한 흐름과 전망

1)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향한 다양한 요구

(1) 주거 안정성을 위한 적절하고 부담 가능한 주거권 요구
그동안 노숙인 지원체계를 이용하고 거쳐 갔던 분들은 거리에서부터 노숙인 쉼터, 부랑인시설, 병원 등 치료시설, 그리고 쪽방․여인숙･고시원 등 염가숙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계선상에서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염가숙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노숙인들과 관련하여 “노숙의 원인은 00의 문제이다”라고 확답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원인은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돌파구로서 적절한 주거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적절한 주거의 보장이 큰 힘을 얻는 이유는 쉼터 위주의 시설수용정책에 대한 한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노숙인 지원체계로 유입되어 어렵사리 돈을 모아 쉼터를 퇴소하게 되더라도 실제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소위 염가 숙소라고 하는 쪽방, 여인숙, 고시원 수준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쉼터로 돌아가는 게 보편화된 현상이다. 이러한 순환현상은 문제의 초점이 노숙인 쉼터의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주거대책의 부재에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해준다. 쉼터 총이용기간은 평균 23.88개월이고 최소 1개월에서 최대 77개월까지 이용한 바 있다고 한다.

<표 2> 노숙이전 ･ 노숙직전 주거형태(자료 : 김진미 2004)
노숙이전 주거형태(5년전)노숙직전 주거형태자택20%7%전세20%6%월세32%35%직장내 숙소17%12%기타(일세 등)11%22%(일세)
구분입소전퇴소후노숙자수비율노숙자수비율자가및전세4113.31871 0.9월세9430.41076.2더부살이,쪽방등12239.582748.0복지시설5216 .860134.9합계309100.01,722100.0
<표 3> 서울자유의집 노숙인 입소전과 퇴소후 주거형태(자료 : 노대명 2003)

노숙인구의 규모와 노숙인이 처해 있는 주거현실의 절박함을 볼 때, 현재의 공공임대주택정책이나 민간임대주택, 주거급여 등 우리사회 주거정책들이 노숙인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때문에 ‘적절하고 부담 가능한 주거, 노숙인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거권 요구’가 전면화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2)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확대, 건강권 보장

빈곤층의 의료문제는 불건강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기인하고 그리고 그 심각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특히 노숙인과 같이 우리사회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무의탁․빈곤계층은 대부분 건강에서 치명적 문제가 있고,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의료수요를 파생시키고 있음에도 이에 대처해야 할 공공의료 수준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의료비를 부담할 수 없는 노숙인의 처지를 고려한 제도의 도입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응급의료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만 노숙인의 최극단적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는 ‘거리’에서의 객사 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의료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접근이기도 하다. 노숙인들은 의료비 부담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의료급여제도｣로 편입되어 공식적인 사회보장체계 내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숙인은 설사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선정된다 하더라도 법정비급여항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총 진료비의 일정 비율을 차지하는 본인부담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의료급여제도로 포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의료비부담 때문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제도를 유지하고 그것을 위한 적정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3) 노숙인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정보인권보장 요구

지난 1998년 이후 많은 수의 노숙인 쉼터가 개소되면서 공식적인 노숙인 지원체계를 거치거나 이용하고 있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개인 신상정보와 상담기록을 입력하여 집적하는 ｢노숙인정보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쟁은 서울시의 ｢노숙인정보종합관리시스템｣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노숙인들은 실직, 가족해체, 불의의 사건 발생, 사업의 실패, 질환 등 여러 가지 중첩된 이유로 인한 한계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노숙인 쉼터인 희망의집을 이용하게 된다. 쉼터 이용자에 대한 수집된 정보는 보존 기한이나 파기 등의 명시가 전혀 없어 한번 노숙인은 영원한 노숙인으로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에 DB화되어 남게 된다. 정보를 제공한 노숙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불리한 상황에서 전과기록처럼 남게 되는 매우 불합리한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집적, 즉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대한 법적 근거도 불명확해 위법의 소지가 매우 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 노숙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생의 어느 한 순간 사회복지적인 서비스를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의료기록에 준하는 비밀이 지켜져야 할 자신의 상담기록과 개인신상정보가 자신의 동의나 법적 근거도 없고, 보존 기한이나 파기에 대한 명시도 없이 수집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수집된 정보의 규모에 비례해 유출의 위험성은 커지고 이에 대해 책임과 보호조치를 확인할 수 없기에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차별이자 통제일 수 있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노숙인에 대한 취업알선이나 사회복귀 등의 서비스 제공과 행정적 통계, 학술적․정책적 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자료(Data)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신상정보와 상담기록의 경우는 그 목적에 따라 수집과 이용 및 보관․관리의 형태가 구분되어야 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비밀 보호가 이루어져야 할 정보인지에 대해, 특히 인터넷을 통해 집적되는 자료의 경우 법적 근거에 대한 검토와 정보제공 당사자의 권리 등에 대해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현재 노숙인 개인정보 수집은 계속된 문제제기 이후 당사자의 사전 동의와 수집 항목의 축소, 시스템 운영규칙(보존연한, 접근 수위 등)의 개선 등으로 진전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수집되는 자료의 양과 의료 정보의 문제, 전과기록처럼 인식되는 정보의 유출 위험성 등은 여전히 갈등의 여지를 안고 있다.

4) 공권력에 의한 비인간적 차별행위와 폭력 근절

거리노숙생활에서 발생하는 공권력과의 마찰은 항시 과잉단속의 문제를 불러 일으켰고, 가혹행위 논란도 계속되어 왔다. 노숙인들은 편의시설이 발달된 공공역사를 거쳐 가고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의료적․행정적 지원이나 보호가 필요한 위기상황임에도 공권력으로부터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다거나 오히려 단속하는 공권력에 의해 사망에 이르는 비인권적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거리생활뿐만이 아니라 노숙생활 전반은 언제든 의료적․행정적․법률적인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는 공권력은 노숙인, 노숙생활에 대한 그들의 무지, 무대책, 차별적 인식으로 인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생존과 생명, 인권의 문제를 간과해 버리는 단속 위주의 행태에 머물러 있다.
한편 노숙인에 대해 단속 위주의 대책 외에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노숙인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하는 범죄 조직은 더욱 교묘해지고 악랄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수법의 노동 착취와 가혹행위, 폭행, 인신매매가 여전히 이루어지는 한편, 진단서와 같은 공문서 발급을 위해 노숙인의 몸에서 필요한 것을 탈취하는 브로커들의 존재나 신분증을 도용한 각종 금융사기에 악용당해 영원히 무적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노숙인은 그 신분적 특성상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에도 공권력 입장에서는 노숙인은 단속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공권력에 의한 비인간적 차별 행위와 폭력은 단속위주의 대처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철도공안, 경찰 등 노숙인과 대면하는 공공노동자들의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5) 공공역사에서의 지원대책마련

공공역사는 다중이용시설이며, 기차 이용객들을 위한 장소이다. 그러나 공공역사는 이러한 일차적 기능 이외에도 가출청소년, 폭행피해 부녀자, 노숙생활자, 인근 쪽방 거주민 등 한계 상황에서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거쳐 가는 관문이자, 이용의 공간이고 생활의 거처이다. 그리고 ‘만취자’, ‘조치필요자’, ‘건강악화자’ 등과 같이 즉각적인 위기개입이 필요한 계층이 상존하는 곳이다.
대도시 공공역사에서 일정한 지원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무료진료소’, ‘가출인합동상담소’, ‘부녀자 보호소’, ‘이동법률상담’, ‘주취자 보호소’ 등을 운영하고 있거나 사회복지․공공서비스를 제공해 온 사례는 공공역사가 다중이용시설이기는 하지만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거쳐 가는 집결지이자 이용의 공간으로 피난처와 같은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실업과 빈곤의 문제가 심각해 철도역과 그 주변, 그리고 열차에까지 일자리가 없어 배회하는 사람들과 노숙생활자가 현저히 증가하자, 이에 대응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응급성에 대응하는 활동으로 규정하고 비영리․민간지원조직과 공공서비스기업이 함께 대책 수립과 지원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공기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역사에서의 노숙인 등 사회위기계층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되어 왔다. 지난 2005년 1월 22일 서울역 충돌사태 이후 인권․사회단체들은 연대모임을 구성했다.
이 연대모임은 공공역사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고, 이후에도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공공역사를 불가피하게 생활의 거처로 이용하는 사회위기계층이 확대․유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속 위주나 일회성 노숙인 대책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며, 이후에도 역사의 이용에 대한 충돌과 갈등이 계속될 것이고, 심지어 잠재적 폭발성을 안고 있음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철도공사 및 지자체, 보건복지부와 건설교통부 등에 관련 대책마련을 요구해 왔으며, 철도노동조합의 사회공공성 강화 요구안으로 제출되기도 했다.

2) 전망

우리 사회에서 일시적인 현상쯤으로 여겨졌던 노숙인 문제는 그동안 공식적인 노숙인 지원체계를 거쳐 가고 이용하는 노숙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복지와 인권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노숙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적절하고 부담 가능한 주거 보장,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확대와 건강권 보장, 노숙인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정보인권보장, 공권력에 의한 비인간적 차별행위와 폭력 근절, 공공역사에서의 지원대책 마련 등 구체적인 수준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숙인 고유의 특정한 문제에 따른 대응과 정책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방향은 대빈곤정책으로의 재편이다. 즉, 노숙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위기상황에 대처할 만한 자산도 없고, 사회적 지지망도 없고, 가족은 붕괴 직전이거나 이미 해체된, 절망 속에서 사회를 등지는 빈곤층 일반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방향을 대빈곤정책으로 연결하고 재편해 나가야 한다.
또한 최근에는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노숙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보편적 권리를 강조하며, 노숙당사자의 시각에서 이해되고 다루어져야 한다”는 당사자주의와 당사자 운동에 대한 지향도 하나의 특징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사자주의, 당사자 운동에 대한 지향은 민간 지원그룹들도 노숙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 일방적 서비스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자율적인 주체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되고 무시되며 주변화된 노숙인,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사고의 진전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이 그렇듯, 노숙인 운동 또한 노숙인을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몫을 넘어 노숙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를 지향해야 하며 그 중심에 권리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 노숙인이 처해 있는 현실과 노숙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에 걸쳐 있는 문제들을 보면 노숙인 운동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 노숙 당사자들은 과연 스스로 주체가 되고 조직될 수 있는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노숙 당사자가 직접 참여 가능한 운동은 어떤 내용이어야 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당사자나 지원조직들이 당당히 노숙인 운동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