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사회 양 극단이 투영된 인터넷 정치공간

지난 12월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은 인터넷을 매우 뜨겁게 달구었다. 아마 이 열기에 데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당사자격인 황우석과 ‘아이러브 황우석’ 카페 회원들 그리고 PD 수첩과 MBC는 물론이거니와, 진달래꽃 뿌리는 장면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블로그 또는 미니 홈피에 한마디 했다가 테러당해 강제로 인터넷에서 퇴출당한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이런 인터넷에서의 광적인 난장이 더 이상 놀랍지는 않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사망사건과 월드컵 열풍,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대선, 그리고 2004년 탄핵사태와 4.13 총선, 독도문제 등 이런 굵직한 국가적 이슈 때마다 인터넷은 열병을 앓았다.
지난 10여년 남짓 짧은 시간동안에도 인터넷은 몇 번 강산이 변했지만, 앞에 기술된 사례들 사이에는 유사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바로 인터넷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의 동원 기제로 작동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파진영과 일부 좌파진영 모두에서 인터넷을 통해 우중정치/동원정치가 창궐하고 미디어 전반이 황색언론화된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파시즘의 전조가 보인다는 우울한 투덜거림도 일부 나오고 있다.
우파 진영에서 기존에 인터넷에 대해 해 왔던 문제제기는, 인터넷이 형식적 민주주의, 즉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점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합리성을 포장한 대의제와 이에 기초한 정당정치는 그간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간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전통적으로 이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기제는 매스미디어(TV/지면신문)였다. 그간 대개의 경우 여론을 주도하는 군사정권과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미디어에 의해 담론이 크게 좌지우지되어 왔었다. 하지만, 과거 남한사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더라도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배질서 바깥에서 분출되는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은 지배계급에게는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역동성은 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97년 총파업 같이 때로는 당혹스러운 수위에까지 이르기도 했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마법과도 같은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런 대중투쟁을 체제내로 성공적으로 흡수해왔다. 이는 과거의 투사들을 지금 여의도 모래바닥 위 상여 속에 가두어 놓는데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성적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의제란 놈은 여러모로 현란한 요술사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의제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라는 주장은, 90년대 후반부터 새로 등장한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지배세력에게 있어 통제하고 관리해야하는 또 다른 골치덩어리라는 걱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걱정은 한동안 정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존 지배세력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87년 민주화투쟁 세대에게는 단번에 지배세력으로의 도약을 이루게 해준 2002년 대선에 있어, 오마이뉴스 등의 인터넷 언론과 노사모 인터넷 카페의 역할은 경천동지할 지경이었다.
이런 역동성으로 한때 인터넷이 대안매체이자 직접민주주의의 혁명적 가능성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들의 결과들, 즉 신자유주의의 강화, ‘애국하자는데 웬 말이냐’는 일방적인 국가주의·민족주의의 득세, 더불어 더욱 폭력적이 되어가는 남근중심성과 성상품화 경향은 실로 우려스러운 것들이다. 국익으로 포장한 정보왜곡과 여론의 조작과 남성중심성은 전통적으로 미디어의 고유 속성이었다. 과거에는 정보를 조작하는 주체가 명확했기 때문에 조·중·동을 비판하고 대안매체를 만들고자 하는 언론개혁 운동이 남한사회의 주요 운동의 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 등에서 보듯이 포털 사이트를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정보의 왜곡과 폭력성은 그 양상이 상당히 복잡하다. 흔히 댓글정치, 펌질의 정치학이라 불리는, 대중들에 의한 직접적인 인터넷 정치적 참여행위가 이런 광기의 주된 주체라는 점에서 실천적 대안을 찾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대중을 적으로 상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양 극단에 있는 듯한 이 현상은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면의 투영이다. 이 이질적인 것 같지만 동시에 나타나는―전통적인 보수 정당체제를 위협하는 참여적인 미디어이면서, 동시에 반여성적이며 국가주의·민족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미디어로서의 인터넷―현상을 다시 이해하는데서 시작해 보자.


2. 87년의 고해성사와 2002년 카니발 문화의 만남

흔히들 네티즌을 ‘정치를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세대라고 규정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몇 년만 거슬러 올라가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해보자. 5월 광화문을 수놓고 어깨를 맞댄 붉은 물결 속을 찬찬히 헤집어 보면 재밌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경기가 열리는 5시경부터 밤 12시 넘어서는 시간대까지, 몇 시간 간격으로 광화문의 문화적 흐름이 미세하지만 뚜렷하게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경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도심을 휘젓고 다니고, 그것에 열광했던 시간대에 이르면 얼핏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평소에는 이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시끄럽게 도심을 휘젓는 행위를 교도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일순간 너나 할 것 없이 영웅이라도 된 듯 아이들에게 환호성을 보냈던 경험,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축제의 공간/ 해방의 공간이 가져다주는 일탈의 경험, 카니발의 공간이었다. 이 문화적 충격을 애써 87년 시청앞 광장과 연결시키던 인터넷 논객들의 낯 뜨거운 아부성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폭력으로 돌변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아주 짧은 논평 ｢‘붉은 악마’를 부추기지 말라｣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최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아니던가? 어쨌든 당시의 열기는 단지 축구라는 것이 매개하기는 했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어떤 것은 바로 87년 시청과 2002년 광화문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어색하게 만나고 있었던 카니발의 욕망이다.
시간을 조금만 지나쳐, 효순이·미선이 때 촛불 집회로 돌아가면, 이 카니발의 문화가 87년의 깃발과 실상은 어색한 만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촛불을 들고 시청과 광화문을 메우던 다수의 대중은 여타의 정치/대중 조직들이 치켜세운 깃발에 문제제기를 했었다. 범대위측은 자신들의 정치운동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싶겠으나 실상 그러했는가? 조금만 솔직해지기 위해 개별화시켜보자. 당시 집회에 참가한 다수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과연 반미구호를 외치기 위해서만 모인 사람들인가? 필자의 사견이지만 아마도 상당수의 학생들에게 당시 촛불집회는 억압적인 학교생활의 일탈구로서 기능하지 않았을까.
변화와 억압에 대한 욕구불만이 해방구라는 카니발의 공간으로 흡수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별적인 일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에 직관적인 정치적 구호가 곁들어지거나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붙여져 내/외적인 정당성이 부여될 때 가능하다. 당시 건너들은 학교선생님들의 이야기도 실상 다르지 않다. 학생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푸념들이었다. 물론 그런 행동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카니발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은 87년 세대의 거세되었던 정치의식의 고해성사와 새로운 세대의 일탈과 카니발 문화가 국가/민족적 자긍심이라는 손바닥을 맞잡고 어우러져 만들어낸 가장 역동적인 찰나 중의 하나이다. 이 카니발에의 직접적인 참여 경험이, 일상적으로 인터넷이라는 상대적으로 열려있는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숙성된 놀이 문화와 만나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놀이터인 인터넷에서 효순이·미선이의 사진과 촛불집회 사진을 서로서로 공유하고 펌질하면서 공감하고 문화적으로 정치화되었다면, 87년 세대의 경우 인터넷이라는 당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공간을 미리 선점하고 있던 정치적 자산이 있었고 시민운동과 언론개혁운동이 인터넷과 조우하면서 정치적 컨텐츠와 대안미디어운동의 선순환적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 산업은 주류 매스미디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양적/질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렇게 양적으로 확장된 가상공간 속에서 보수적인 정당과 매스미디어의 질서 바깥에서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3. 스펙터클한 공간으로 진화된 인터넷

우리는 지금껏 인터넷의 정치 문화에서 놀이문화/카니발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87년 민주화투쟁의 성과와 어떻게 만났는지 짧은 역사적 경험을 기억해내고, 또 국가·민족주의가 매개체로 작동했음을 서술했다. 그러나 찬란했으되 어색했던 이 만남은 2004년 탄핵사태와 총선을 끝으로 종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인터넷 정치/미디어 지형에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노무현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컨텐츠가 실상은 별게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 지금, 정치적 동력의 두 사이클―90년대까지의 보스중심의 구시대적 정당구조와 민주주의세력의 새로운 지배그룹의 컨텐츠로서의 가치―이 한꺼번에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 전략 속에서 각 정당별로 딱히 고유하고 차별적인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의제로 대중을 통제할 만한 새로운 컨텐츠가 없어진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별화되는 경향은 필연적이다. 이런 경향 속에서 인터넷에서는 후발자에 속하는 정치인들조차 스스로 기존의 정당정치의 틀을 벗어나 개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직접적인 대중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 뭔사모가 그렇게 많은지 노사모의 성공을 모델로 박사모/고사모 등의 아류가 속속 등장했으며, 개인 미디어의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추어 블로그를 대중정치에 동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기존의 대의제 정치의 변화된 외연확장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각 정치인들의 직접적인 대중활동은 새로운 담론과 의제의 생성/토론/합의의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바뀐 멀티미디어적인 환경에 발 빠르게 조응한 이미지 정치의 연장선이며, 구호만 요란할 뿐 대의제에 대한 보조적인 도구로 이미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기존의 지배메커니즘, 즉 대의제에 기초한 질서들과 시민사회/노총 중심의 상층 엘리트집단과의 합의구조를 선호하는 것은 여전하다.
또 하나는, 기존의 오프라인 매체(신문)와 인터넷 신문의 대립구도가 포털 미디어 권력의 강화라는 새로운 경향 속에 종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의 트렌드는 다른 미디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기술종속적이다. 2-3년을 주기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이런 트렌드를 선도하고 강제하는 곳은 대자본이 집적되어 있는 대형 포털이다. 인터넷의 양적 확장이 결과적으로 대형 포털의 독점적 지위로 귀결되는 것은 자본주의 운동에서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새로운 매체는 초창기 엄청난 전파력 덕분에 대중에게 믿을만한 전도사의 역할을 하지만,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시간이 갈수록 정치/경제적으로 구조화되면서 미디어 자체에 의해 걸러지고 판단된 정보를 중심으로 다시 재편된다. 여기에도 변형된 공모관계가 존재한다. 지난 일련의 과정에서 커뮤니티와 인터넷 언론, 정치권의 모종의 트라이앵글 구조가 작동했다면, 최근의 경향은 포털을 꼭지점으로 하는 새로운 트라이앵글 순환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각 언론사가 명목상의 비용만으로도 포털에 기사를 제공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이 공모관계는 구체적으로는 정치권에서 만들어지는 직접적 대중활동과 연결되어 완성된다. 지난 시절 인터넷에서 한 논객한다던 인물들이 주류정당 질서에 대부분 편입된 결과, 과거 인터넷 논객들이나 썼을 법한 정치비평들이 블로그질 또는 사이질에 의해 생산되면 언론사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되어, 포털을 통해 언론화된다. 이를 통해 정치인은 대중 한가운데 놓여 정치적 자산을 쌓고, 각 언론사는 해당 정치인과의 관계 속에서 언론사의 정치적 포지션과 역할을 인정받는 것이다. 포털을 통해 담론화되는 의제라는 것들이 실은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난닝고’ 같은 폭언들이 서슴없이 오고가는 우격다짐의 전장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선정성이야 말로 포털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포털에서 가치있는 컨텐츠란 UV(user view)가 가장 높은 것을 의미하며, 가장 선정적이고 저열할수록 UV가 높다. 해당 기사에 욕을 하는 순간에도 UV는 계속 올라가고 이는 광고수익으로 직결된다.

포털의 가장 큰 특징은 스펙터클 여기에서 사용한 스펙터클의 개념은 기 드보르(Guy Debord)의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차용한 것이다.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개념을 ‘우리의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우리를 우리 노동의 과실들, 동료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 자신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광고, 매체 이벤트, 오락, 그리고 의사소통 기술의 무한정한 분출’로 사용하고 있다.
함이다. 이 스펙터클 공간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사회분열, 그리고 거대한 폭력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인터넷 댓글 정치는 더 이상 동감 또는 차분한 논쟁의 공간이 아니라, 즉자적인 유희와 수준 낮은 댓글놀이의 놀이터일 뿐이다. 물론 이거 아주 재밌기는 하다.
진보진영도 자신의 담론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정파 투쟁에 매몰되는 상황 역시 딱히 내용 없는 주류 지배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의제가 비어있는 스펙터클 공간에서 국가주의·민족주의만이 홀로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딱히 한국에만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초강력 슈퍼 울트라 스펙터클하다는 할리우드 영화만을 보아도 성조기 휘날리는 애국주의가 난무하지 않던가. 담론이 사라진 이전투구의 온라인 공간에, 현실의 왜곡된 경향이 원형 모습 그대로 배설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예인 또는 국가적 영웅이 대신하고 애국주의적인 광풍이 지배한다. 단지 인터넷은 특유의 폭발적인 전파성으로 인하여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물론 인터넷과 포털이 이렇게 강화되는 국가주의·민족주의의 원흉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국가주의·민족주의의 가장 큰 원흉은 제도교육이다. 독도문제만 터지만, 독도 특별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킨다. 황우석 사태만 해도 그렇다. 한 학교 선생님이 자기 담임반 아이들에게 단체로 난자기증 동의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역할도 애써 무시하면 섭섭하다. 해마다 때 되면 꼬박꼬박 틀어주는 전쟁영화와 무슨 특집극들을 우리는 매년 의무적으로 재시청해야 한다.
최근 미국 NFL MVP를 수상한 한국계 혼혈 미국인 ‘하인즈 워드’에 대해 자랑스러운 한국계라며 미디어와 교육계에서 만들어내는 웃지 못 할 ‘우상화’에 대하여,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훌륭한 분이다. 이렇듯 핵심은 이런 제도 언론/교육에 있다. 단지 인터넷이라는 스펙터클한 놀이동산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이런 적개심을 단련시키고 고취하는 훌륭한 장소일 뿐이다.
인터넷은 욕망이 꿈틀대는 공간이다. 혁명과 일탈의 욕망이 특정 정치적 주제와 조우했을 때, 때로는 은폐된 진실을 폭로하는 도구로 또는 직접 민주주의로 상상력이 발현되는 공간으로 전이된다. 반면 무의식적인 집단 이데올로기가 배설될 때는 그것의 폭력성으로 인해 공포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4. 인터넷의 동원 메커니즘
인터넷은 쌍방향적 소통방식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과 함께 탁월한 전파력이 있다. 네티즌이 3000만 명을 넘어선지 한참이다. 인터넷은 그 어느 미디어보다 현실을 열정적으로 투과한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동원 시스템이 작동할 때는 심하게 과장되어 반응하고 반대의 경우엔 존재감조차 사라진다.
초창기 인터넷에서 탁월한 전파력은 주로 펌질과 링크로 대변되었다. 3명만 건너뛰면 4500만 모두와 인맥으로 연결된다는 한국사회에서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진지(홈페이지)와 한두 번의 펌질을 할 수 있는 몇백 명의 대중동원력만 갖출 수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포털 중심의 인터넷 지형에서는 이제 펌질만으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워낙 낚시도 많기 때문에…….
포털의 힘은 정보의 집중력에 있다. 양적 집중만이 아니라 질적 집중이 가능한 공간이다. 모든 이슈별로 다양한 매체의 입장을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고, 대중이 원하는 것만으로 다량의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2월부터 일부 포털에서 성명서 게시판을 운영한다고 한다. 이제 포털은 미디어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공간마저 줄 세우려 한다. 그래~ 다 가져가라. 정보의 집중력은 포털업체로 하여금 가장 막강한 미디어 권력을 누리게 해주었다. 포털 미디어의 권력은 미디어 권력(인지도)과 대중의 즉자적인 욕망(조회수)의 적극적인 만남에서 만들어진다. 이 완벽한 시장논리, 이 공간에 미디어의 책임과 공정성, 이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포털의 권력이 인터넷 정치지형 내에서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대중의 잠재적이고 일반적인 욕구―국가주의·민족주의―가 동원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인터넷 정치지형을 동원의 메커니즘으로만 자꾸 한정한다면, 계급적인 접근에 한계가 있다. 앞의 사례만 보더라도 현재 대중의 일탈 욕구와 주류 이데올로기가 맞닿아 있는 지점은 민족적 자긍심, 국가이익과 같은 민족주의와 정치적 연장선에서 반친일·반보수 구도이기 때문이다.
5. 인터넷은 넓고, 소스는 많다.

초기 인터넷에 주목했던 진보진영은 편리한 소통의 공간이라는 효용성과 폭로와 선동의 기제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일부 주목할만한 대중적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97년 총파업 통신지원단 활동과 2001년 대우차노조 총파업투쟁 영상중계단 활동 등.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의 주류 문화와 내용적·형식적으로 조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고, 저 전투장에 계급장 떼고 붉은 띠 둘러매고 저네들처럼 언론사 몇 개 만들어 포탄 장전! 포털을 향해 발사! 곧바로 ‘사격 중지! 보병 돌격 앞으로!’ 하면 되는가? 아마 그 결과는 고지에 올라 ‘어~라~~ 여기가 아닌게벼?’
이 좋은 세상, 인터넷 다시보기 VOD 서비스로, 2005년 뜨거웠던 황우석 열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광화문을 붉게 물들인 ‘대~한민국’을 등에 업은 황우석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게임이 그렇게 뒤집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반 초반 MBC PD 수첩의 선제골이 터졌으나 곧바로 터진 황우석의 눈물의 동점골, 이후 기세 등등 ‘대~한 민국’ 함성은 높아만 가고, 골만 잡으면 2~3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스피드와 전방위 압박, 그리고 후반 시작하자마자 역습 찬스, 안규리의 감각적인 힐 패스에 이은 김선종의 센터링~ YTN의 앞에서 잘라먹기 헤딩 슛~ 역전!! 다급해진 MBC의 당황한 수비와 황우석의 할리웃액션으로 일순간 경기는 흥분의 도가니! MBC 레드카드~ 퇴장!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 그러나 황우석이 들것에 실려 나갔다 들어오는 사이 후반 인저리타임 노성일의 어이없는 소뒷걸음질 자살골!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 교체 투입된 서울대조사위의 연장 골든 골~ 승리를 바꿔치기 당했다고 울먹여보지만 이미 게임 종료.
이 드라마틱한 역전승의 숨은 주역들은 단연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티한 반칙에도 굴하지 않는 성실한 수비와 공격의 실마리를 만들어준 미드필더들, 포털을 꼭지점으로 하는 동원 시스템 바깥에서 ‘광기에 휩싸이지 않은, 진지하게 성찰하면서도 유쾌하게 노닥거리는, 대중’ 장귀연, ｢PD수첩의 용기, BRIC의 전문성, DC과갤의 상식을 사랑한다｣, 민중언론 참세상 칼럼.
들이었다.
앞에서도 기술했듯 애국주의가 횡행한다는 사실이 실상은 담론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비어있다는 것의 역반증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름의 의제설정과 줄세우기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것은 더 이상 그들의 주장이 변혁적이지도 심지어 개혁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을 역시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향후 대권구도에 따라 강금실이나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여성주의 논쟁이 인터넷에 불어 닥칠 가능성은 있지만…….
또한 그런 애국주의의 허상을 무너뜨린 것은 광란의 동원기제 바깥의 상식적인 대중이었다. 인터넷은 넓다. 여기에 여전히 대안이 있다.
이전투구식 토론/논쟁 중심의 주류 인터넷 정치담론이나, 맹목적인 민족의식에 기대지 않고 상식과 대안적인 내용 생산을 위한 공감/전이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별게 아니다. 진보진영의 활동가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성실한 운동과 정보 공유를 통한 집단 지성의 발전, 그리고 서로간의 운동에 대한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방법은 많다. 포털의 대자본이 투여된 검색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애써 우리 내용을 저들에게 갖다 바치지 않더라도, RSS(Rich Site Summary) 또는 TAG 등의 기술만으로도 우리가 생산할 컨텐츠를 충분히 네트워크화 시킬 수 있다. 소스는 많다. 인터넷이니까. 단지 예전의 과도한 진지함과 무게를 조금만 덜어내자. 인터넷은 즐거운 카니발의 공간이 아니던가. 내가 재밌어야, 너도 재밌지 않겠어? 나는 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