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의 현황과 전망
정용욱ꋯ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1. 들어가는 말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 지 3년여가 지났다.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반사회적인 행위로 치부되어 일반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났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그 사이 불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비종교적 이유에 따른 병역거부자 등이 등장하면서 그 인식 지반이 급격히 확장되었으며 한국사회의 주요한 논쟁 지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되었고, 병역거부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사실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회 운동으로서 병역거부는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토록 치열하고 저항적이었던 한국의 사회운동 역사에서 그동안 병역거부가 논의되지 못했다는 것은 국가안보가 국가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국가안보 시스템이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규율로서 작용해왔던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특수성으로부터 운동사회 역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80년대 전방입소 거부투쟁이나 양심선언 군인 등처럼 군에 대한 저항행위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병역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는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어느 정도 정치적 민주화가 정착되고 보편적인 인권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수준에 와서야, 뒤늦게 서구의 병역거부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비로소 시야를 내부로 돌리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일반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거부라는 점에서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징병제도 및 시민적 권리의 발전과정과 그 역사적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는 국가와 개인 간의 오랜 관계설정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병역거부운동은 이제 종교나 양심의 자유와 같은 시민적 권리 측면에서부터 전쟁과 군대,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불복종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병역거부운동은 국가 시스템의 합리화라는 차원과 국가 시스템 해체라는 급진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역시 아직은 인권의 측면에서 주요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의 다양한 성격과 새로운 국내외적 상황 등의 영향으로 인해 인권적 차원을 넘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특히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물론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 선언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서구의 병역거부운동이 근대 이전 종교적 평화주의에서 출발하여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반전평화 운동으로 성장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대단히 빠르고 압축적인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서구와 한국의 병역거부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뒤 병역거부운동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쟁점과 변화들을 짚어봄으로써 빠르게 전개된 국내 병역거부운동의 현 위치와 앞으로의 과제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2. 서구의 병역거부 역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은 죄악이라는 종교적 평화주의, 특히 서구 기독교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김두식, ꡔ칼을 쳐서 보습을ꡕ, 뉴스엔조이, 2002. 참고
종교적 병역거부의 전통은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퀘이커 등 주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신교도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병역거부 종교로 알려져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이보다 훨씬 늦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게 된다. 국민국가 시대로 들어서면서 병역 의무는 시민으로서의 특권과 동일시되었으며, 특히 수백만에 달하는 군인들이 동원되는 총력전 상황에서 병역은 시민이라면 당연히 감내해야하는 중요한 요구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초기 유럽의 병역거부자들은 신체형은 물론 사형에까지 이르는 혹독한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제도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이다. 이 때를 즈음하여 기존의 평화주의 교파와는 관계없는 새로운 종류의 병역거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특히 자본가 계급의 전쟁에서 싸우기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은 종교적 거부자와 연대하여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 같은 압력에 부딪히자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6년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는 병역법을 마련하고 병역거부자를 심사하는 지방특별법원을 설치하여 그 인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최초의 국가 징병제도를 실시하게 된 미국 역시 병역거부자들의 비전투 분야 복무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초기 인정 범위는 전통적으로 인정된 평화주의 교파에 국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밖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볼세비키 혁명에 성공한 레닌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시험적으로 운영하였으나 스탈린 집권 이후 다시 일체의 병역거부가 불허 되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비종교적 평화운동 조직이 국제적인 규모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등이 있으며 주로 자유주의적 중간계층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또 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병역거부 인정 범위가 모든 종교적 거부자로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미국과 영국에서는 농업, 산림관리, 보건 분야 등에서의 민간대체복무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 기준이 더욱 확대되기 시작한다. 1965년 미국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필적할 수 있을 정도로 한 개인의 인생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신념”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기준을 넓혔다. 나아가 1970년에는 종교적 신념만큼 타당한 윤리적, 도덕적 신념도 인정하였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베트남 전 당시 미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일어난 병역거부 운동이 크게 작용하였다. 실제로 징병제와 군복무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은 병역거부 인정 범위의 확대뿐만 아니라 미군의 동남아시아 철수와 1973년 징병제도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Moskos, Charles C. & John Whiteclay Chambers II, The New Conscientious Objection: From Sacred to Secular Resistance, NY: Oxford, 1993.

가장 극적인 변화는 독일에서 일어났다. 나치즘과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은 독일의 정치·군사 제도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강요된 징병제에서 벗어나 시민적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는 하나의 보호책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병역거부 인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전쟁범죄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책임이 강조되었으며 1949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에 의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보장되기에 이른다. 이후 서독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그 결과 1959년에 징병제가 재도입되지만, 연방 법률은 국가 간 교전에 사용되는 군사력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민간대체복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밖의 징병제를 실시하는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 법률에 명문화하기 시작했으며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던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체제붕괴 후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헌법에 명문화하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96개국이 징병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 중 30개국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War Resisters' International, Refusing to bear arms: A worldwide survey of conscription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1998, updated 2003.



3. 국내 병역거부 운동의 형성과 전개

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재발견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도 소수 존재한다.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주 침략 이후 일제는 일본 내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천황의 신격을 거부하고 병역을 거부하자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과 조선에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대해 대대적 체포를 단행했다. 이른바 등대사(燈臺社) 사건으로 불리는 이 같은 조처로 조선에서는 모두 38명이 체포되었으며 이 중 3명은 옥사하고 나머지 33명은 해방이 돼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정부가 편찬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는 등대사 사건이 항일운동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한홍구, ｢‘여호와의 증인’ 앞에서 부끄럽다｣, <한겨레21>, 2004.5.27.
일제가 조선인에게까지 징병제도를 확대한 1944년부터는 적지 않은 청년들의 병역기피와 저항이 이루어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리산 등에 숨어들어 항일무장투쟁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한홍구, ｢상아탑은 병역비리탑?｣, ꡔ대한민국史ꡕ, 한겨레신문사, 2003.

해방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혹은 집총 거부가 법적으로 처벌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병역을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들은 각각 병역기피와 항명죄로 처벌을 받았으나 당시의 형량은 길어야 1년 이내였다. 이 시기에 특이한 점은 군대내 비무장 복무를 원하는 안식교인들을 위해 국방부 장관 령으로 안식교인 병사들을 위생병 또는 기타 직접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병과에 가능한 배치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국방총제2288호>1957.4.3.
집총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것은 5·16 군사반란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다. 병역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집총거부자에 대한 형량은 점차 늘어나 5년, 6년씩 징역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은 그리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다. 당국은 이들에게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징역을 선고하고 형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훈련소로 보내고, 집총거부를 하면 또 다시 징역을 보내는 식으로 병역거부자들을 취급하였다. 병역거부자 정춘국 씨의 수기, ꡔ민주사회를 위한 변론ꡕ46호.

이 같은 관행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당시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할 경우 군형법 44조 항명죄로 법정 최고형인 2년이 선고되었는데 상관이 총을 두 번 주어 두 번 다 받기를 거부하면 경합범이라고 하여 최고형의 2분의 1을 늘린 3년 형이 선고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해괴한 법적용은 군대 내에서만 통용된 것이 아니었다. 1992년 대법원은 상관으로부터 집총을 하고 군사교육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고도 여러 번 이를 거부한 경우에는 하나의 항명죄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횟수 만큼 항명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선고92도1534판결>, 1992.9.14.
군복무 기간이 30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든 이후인 1994년에는 특정종교의 병역거부를 억제한다는 이유로 항명죄 최고 형량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가 무색하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병역거부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이런 식으로 해방 이후 현재까지 처벌받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수는 약 1만 여명에 달한다. 최근의 추세를 보더라도 2000년 683명, 2001년 804명, 2002년 734명, 2003년 약 705명 등 매년 약 700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문제-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공동보고서>, 2004..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2001년 초, 한 주간지 보도를 통해 놀랍도록 많은 수의 병역거부자들이 그 동안 처벌을 받아왔고 현재도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1년 말,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선언은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사회적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지난 50여 년 간, 만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을 거부해 왔으며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안보문제에 가려, 외면당했던 인권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 학계, 법조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도입에 관한 각종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2002년 2월에는 각계 인사 1,552명이 서명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1000인 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002년 2월에는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발족하여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연대회의의 발족은 병역거부 운동이 짧은 기간 안에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또 다른 불교 신자를 비롯해 개인적 혹은 정치적 동기에 따른 비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들이 공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총 14명에 이르고 있다. 2002년 9월에는 아직 징집되지 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미리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소위 ‘예비 병역거부 운동’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나동혁 및 대학생 예비 병역 거부 선언 기자회견, 2002. 9.12.

2) 최근의 법적 변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사법계에서부터 나타났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는 대법원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최고기관이었다.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은 1969년, 1985년, 1992년에 각각 대법원에 상고하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서 비롯된 행위이므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선고도1534판결[항명], 1992. 9.14.)라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법원들은 예외 없이 병역거부자들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선고해 왔다.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화한 이후 민간법정에서는 형제나 아버지가 동일한 고초를 겪었던 거부자들의 경우 6개월 감형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으며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존중하면서도 다시 병역통지를 받지 않을 최소 형량인 1년 6개월의 일명, ‘맞춤형량’ 선고 관행이 정착되었다. 2002년 1월 29일에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병역을 거부하여 재판을 받고 있던 이경수씨가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병역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위헌여부 심판제청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인정하여 현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이 계류 중이다. 이는 병역거부 당사자들에 의해서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방식이 아니라 사법 당국에 의해 위헌여부를 물은 것으로, 의미가 상당히 의미가 크다. 이 결정 이후 사법부에서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선고를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 미루는 추세를 보이며 이에 따라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법원에 의해 재징집을 피할 수 있는 최소 형량 선고나 보석 결정이 증가하면서 2000년 말 약 1,600여 명이었던 병역거부 수감자 숫자는 2004년 6월 현재 439명으로 감소하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문제-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공동보고서>, 2004.

이 같은 사법부의 변화는 결국 2004년 5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이정렬 판사의 병역거부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천부인권인 양심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가의 형벌권과 개인의 자유권이 충돌하는 경우, 형벌권이 한발 양보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비록 1심 판결이었지만 그동안 한국의 ‘특수한 안보상황’이라는 단순한 정황 논리 외에는 이렇다할 헌법적 근거 없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판결해 왔던 사법부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의미 있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사법부 내 ‘반란’은 결국 두 달 만에 대법원에 의해 신속하게 ‘진압’되었다. 결국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는 원점으로 돌아 온 것이다. 그러나 12명의 대법관 중 1명이 양심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반대의견을 제출하였으며 5명의 대법관이 대체복무제도 입법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반대의견과 의견을 같이 한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체 판결 내용은 여전히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국내 사법부의 보수성을 재확인하는 것에 그쳤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대체복무제도의 입법화 여지는 오히려 더 커진 결과를 낳은 것이다.


4. 병역거부운동의 접근 방식

1) 병역거부운동의 인권적 접근

한국에서의 병역거부 운동은 주로 여호와의 증인을 중심으로 한 피해자 중심의 인권운동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실제 운동의 시발점도 여호와의 증인의 현실이, 한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이후 2001년 3월 국내 50여명의 활동가들이 징병제도와 관련한 비공개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운동은 실질적인 탄력을 받게 되었고, 실물화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단체로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동성애자인권연대’, ‘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회’ 등이 주축이 되었다.
당시의 접근은 주로 인권을 중심 화두로 하여 외국의 사례를 파악하는 것, 혹은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군대 혹은 징병제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집총거부로 1년에 600여 명씩 감옥에 간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에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접근했고, 그 해결방안으로 서구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대체복무제를 모색해 보는 정도에 한정했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대체복무제’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급진적인 성향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신성한 의무로만 여겨졌던 군대에 대해 다른 식의 접근을 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에서는 상당히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던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비공개 워크샵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징병제를 비판하는 3개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수사에 들어갔으며, 운영자들이 소환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는 연대운동 내에 병역거부에 대한 문제의식이 좀 더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지지부진한 논의가 계속되던 중 ‘오태양’씨를 비롯한 몇 명의 병역거부선언이 이루어지면서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시작한다. 이는 주로 법·제도의 개정운동차원의 접근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외국 주로 대만과 독일 대만의 경우 2000년에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했는데, 특히 중국과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는 가운데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의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몇몇 인권단체와 법학교수, 변호사 등을 주축으로 병역법 개정안 마련이 추진되었고, 2002년 7월에는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인권적 접근은 법·제도적 접근으로 환원되면서 변호사, 교수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운동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대중적 차원의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기도 하였다. 정치적 변수에 기반한 평화운동은 소수의 정치지도자의 결단과 이론적 전문가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대중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어렵게 한다.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김숙임, ｢일상에서 평화만들기｣,여성평화아카데미 2001 봄강좌 발제문 참고.
물론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안보 우선 논리와 빈민개병제라는 유행어 까지 낳을 정도로 불합리한 징병제도 하에서 군복무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만들어낸 왜곡된 차별 구조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운동적 접근은 국내뿐만 아니라 병역거부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의 가능성과 UN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와의 소통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를 가져왔다. 실제 국내에서 처음 병역거부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비공개 워크숍의 경우도 퀘이커교 평화단체인 미국친우봉사회(AFSC) 사회사업과 공공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1917년 미국과 캐나다의 퀘이커교도에 의해 창설된 단체이다. 1, 2차 세계대전 중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도와 대체복무 형태가 확대될 수 있도록 활동했다. 평화시에는 지역사회 발전, 미국 내 인종화합, 계절노동자 원조, 전쟁 피해지역 주민에 대한 구호, 난민 지원 사업 등의 국내외 사업을 추진한다. 1947년 영국의 퀘이커 봉사협회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www.afsc.org
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만의 입법위원, 콜롬비아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들도 패널로 초청되었다. 또한 2001년 8월 터키에서 열린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 1차 세계대전 중 활동한 반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1921년 영국에서 설립된 전 세계 평화운동가들의 네트워크 조직이다.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떠한 전쟁에도 반대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는 창립선언문은 이 단체의 성격을 축약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전쟁세 납부 거부운동, 제3세계 병역거부자 지원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현재 40여 개국 80개 지부가 활동 중이다. www.wri-irg.org
의 연례세미나 참여, 같은 해 12월 서울에서 병역거부 국제회의 개최, AFSC, WRI 와의 지속적인 정보공유 등 운동에 있어서 작고 실질적인 부분에서부터 큰 사안에까지 외국 평화단체와의 연대는 병역거부운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연대회의 출범 직후 지속적으로 유엔인권위원회 유엔인권위원회는 1970년부터 병역거부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여 이후 1987년부터 2년마다 한번씩 병역거부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일명 병역거부권의 ‘마그나카르타’로 알려진 1998년 결의안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로서 누구나 갖는 보편적 권리이며, 군 복무 중인 사람들도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 각 국은 병역거부로 인해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며 병역거부 취지에 합당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병역거부자의 신념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하도록 각 국에 촉구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에는 전시에 처벌 받았던 병역거부자에 대해 사면·복권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됨으로서 병역거부권이 평화 시기는 물론 전쟁 시에도 침해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임을 분명히 했다. 연대회의는 설립 직후부터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해 왔으며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과 공동으로 한국의 병역거부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현재 유엔인권위원회 위원국이다.
에 참가하는 등 국제기구와의 소통 또한 민간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국제연대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이전의 국제연대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전의 국제연대가 세계적인 여론 형성을 통해 특정 국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의 국제연대는 대정부 압박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통과 연대를 통해 각국의 시민사회 혹은 운동네트워크 사이에서 국제적인 인권향상, 나아가 평화문제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2) 반군사주의 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

병역거부 운동의 실제적인 흐름이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위한 병역법 개정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면 담론 차원에서는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은 강제징병제의 이행을 위한 성별위계에 입각한 여성배제의 논리 국방의 의무 이행이 국민정체성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 연원과 이의 여성배제적 성격에 대해서는 권김현영,｢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ꡔ고대문화 55ꡕ, 2002 여름 참고.
에 대한 비판, 징병제 혹은 군대라는 조직으로 인해 파생되는 군사주의 문화 징병제에 따른 모성과 부성의 차별, 즉 부성으로서 국가방위에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공적 주체와 모성으로서 사적 보조체의 관념이 일상화, 사회화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으로는 권인숙, ｢군사주의와 여성｣, ꡔ인권학술회의 자료집ꡕ, 2001 참고.
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군대에서 통용되는 사나이 이데올로기․명령과 복종의 문화․폭력을 수반한 위계질서 등등이 사회에까지 이어지면서 여성차별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분석과 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군대라는 조직과 사회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운동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병역의 문제를 우리 일상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기에 대중적 차원의 운동, 혹은 생활양식의 운동으로 그 외연을 넓히는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단지 사회적 문화의 결을 바꾸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대안적 주체를 형성한다는 의미 또한 갖는다. 90년대 사회운동의 좌초원인을 ‘사회운동세력이 의식 이전에 자신의 사고와 태도를 결정하고 있는 습관의 영역에 대해 성찰 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에서 찾는 입장으로는 김동춘, ｢한국사회운동의 현주소｣, ꡔ황해문화ꡕ, 2000 겨울 참고.
즉 사회운동 주체의 자기반성과 운동사회의 내부 민주주의는 단지 국가에 대한 비판 혹은 요구 운동을 넘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 ‘거부의 운동’과 ‘주장의 운동’의 구분을 통해, 정체성 중심의 운동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논의로는 알랭 투렌, ꡔ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ꡕ, 당대, 2000, 참조.
을 설정할 수 있게 하며 이는 역으로 새로운 대안사회를 책임질 주체생산의 의미도 있다.
이 같은 반군사주의 담론은 병역거부운동이 본격화되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국내외 움직임과 이에 따른 반전평화운동이 급성장하면서 실질적인 운동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우선 병역거부운동의 주체 구성에 있어서 변화가 나타난다. 초창기 병역거부 운동이 주로 인권단체와 변호사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주축이었다면 현재는 연대회의 출범 이후 등장한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과 예비병역거부를 선언한 대학생 등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들은 병역을 거부하는 주된 근거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인권적 측면뿐만 아니라 전쟁 및 군사주의, 일상에서의 구조적인 폭력문화 거부 등을 내세우고 있다. 표 3-2-1. 참조

이 같은 흐름은 병역거부자단체인 ‘전쟁없는세상’의 결성으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기존 반전평화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는 물론 반군사주의 캠페인, 국제 병역거부운동 단체와의 연대 이는 주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과의 연대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WRI는 매년 5월 15일과 12월 1일을 각각 세계병역거부자의 날과 평화수감자의 날로 정하고 매년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의 병역거부문제에 초점을 맞춰 국제적인 연대 행사를 벌인다. 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이 행사에 동참하기 시작해, 지난해 병역거부자의 날에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올해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반군사주의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특히 2003년 평화수감자의 날에는 한국의 병역거부 수감자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기도 했다.
등을 통해 새로운 운동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2003년 11월에는 현역 군인인 강철민 씨가 한국군 이라크 파병 계획에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하고 농성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선택적 병역거부 특정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병역거부 형태를 지칭한다. 강철민 씨의 경우 실제 파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선택적 병역거부자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대표적인 선택적 병역거부 사례로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군복무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병역거부자를 들 수 있다.
문제가 새롭게 부각하기도 했다. 특히 강철민 씨의 농성 과정에서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들이 농성기간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감으로써 이전의 운동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표 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현황
이 름
신분 (직업)
선언일
거부 사유
오태양(29)
불교신자, 평화운동가
01.12.17
불교의‘불살생’교리에 따른 평화주의
유호근(28)
민주노동당
02.07.09
반전평화주의
임치윤(26)
대학생
02.07.30
반전평화주의
나동혁(27)
대학생
02.09.12
반전평화주의
최준호(23)
풀무농업기술학교 전공학부 수료
03.03.
생태평화주의
김도형(24)
불교신자, 대학생
03.04.30
종교적 신념에 따른 평화주의
임성환(28)
출판사 아웃사이더 대표
03.07.01
반전평화주의
임태훈(29)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성적소수자 그룹 대표
03.07.22
반전평화주의, 성적소수자에 대해 정신질환자로 판정하는 징병당국의 차별 반대
염창근(28)
대학원생, 이라크반전 평화팀 활동
03.11.13
반전평화주의
강철민(23)
현역 육군 이등병
03.11.21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
영 민(25)
노동문화방송 joy3.net
04.01.26
반전평화주의
최 진(29)
초등학교 교사
04.05.15
반전평화주의

5. 병역거부운동의 과제

이제까지의 병역거부 운동이 주로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문제와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병역거부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병역을 거부한 이유가 곧 운동의 목적이며 병역거부는 이를 위한 적극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운동의 방향 역시 병역거부권 확보를 통한 소수자 인권보호 뿐만 아니라 병역거부를 적극적인 저항의 형태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또한 강철민의 농성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운동에 있어 목적보다는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적인 자유권조차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해 약 700여 명이 수감되고 있는 인권 현실 또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병역거부운동의 다양한 측면들 속에서 병역거부운동에 요구되는 과제를 짚어 봄으로써 향후 병역거부운동의 방향을 전망해 보자.
우선 병역거부운동의 주요한 측면으로서 제기되고 있는 인권적 접근 방식과 반군사주의적 접근방식 간의 접점을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은 이 두 입장 간의 뚜렷한 대립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지만 국제적인 병역거부운동 과정에서 이 두 입장은 오랜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Andreas Speck and Bart Horeman, “CO as a human right vs CO as antimilitarist action”, Broken Rifle 55호, 2002. 5. (http://wri-irg.org/pubs/br55-en.htm).
반군사주의 운동으로 병역거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인권적 접근만 강조할 경우 오히려 국가의 군사화를 세련되고 첨단화 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지로 대만의 경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군 첨단화에 따른 인력 감축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 주도로 추진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와 관련해서는 Andreas Speck.“Conscientious objection in Germany: Antimilitarist weapon or individualist right?” (http://people.freenet.de/ask/e_co_germany.ht ml) 참조.
또한 대체복무제도와 관련해서도 국가가 자국의 시민들을 징집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대체복무제도가 오로지 민간성격의 것이라 해도 전시체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인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군사적 수단에 대한 저항과 비폭력을 지향하는 사회적 변화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반군사주의적 접근 방식이 강조될 경우 병역거부자들의 다양한 개인적 동기들이 간과될 수 있으며 당장 수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양산되는 문제에 대처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자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현 시기 병역거부운동에 필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군사주의적 측면의 인권적 접근과 개인 인권을 사회적 권리로의 확장이라는 양 측면 간의 접목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가 부여해왔던 ‘시민권’의 의미 확장과 의미 전환이 필요하다. 즉 과거 국가가 부여하고 ‘법적․형식적 권리’에 국한했던 시민권 개념을 평등이나 ‘사회정의, 시민적 가치나 원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시키는 것과 ‘개인적․독립적 권리’에 국한했던 의미를 ‘집단적․관계적 권리’ 개념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의 경우, 군대 내 인권 실태 개선과 같은 군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 강화, 군사안보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인간안보 개념의 확대, 집단적 권리로서의 평화권 모색 등으로 더욱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의 개념과 외연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양심에 따른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행위 중 하나이다. 양심에 따른 거부는 병역과 관련해서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라 개인과 국가의 관계 설정과 관련한 광범위한 거부권을 의미한다. 즉, 국가의 요구를 양심에 기초하여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부당한 정책을 행사하는 정부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든지, 투표를 거부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저항이 포함되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이처럼 광범위한 시민 불복종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지켜내려는 오랜 저항이자, 나아가 소수에 의해 독점된 안보 결정권을 사회적 권리로서 되찾기 위한 광범위한 저항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안보 상황은 병역거부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역거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며 이러한 안보정치가 계속되는 한 병역거부 역시 계속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병역거부운동은 아래로부터의 평화전략 혹은 주체중심의 평화전략으로서 새롭게 모색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