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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좌파정치의 재모색

진보평론  제36호
박이은실󰋯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들어가며

1987년 본격적인 ‘진보여성운동’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의 등장 이후 그동안 운동진영의 안팎에서 여성운동의 역사가 짚어져 왔고 그에 대한 비판과 제언도 있었다(김경희, 2005; 윤정숙, 2004; 이송희, 1990; 정현백, 2006a; 정희진, 정현백, 2006; 호성희, 2007 참조). 그 중에는 해방 이후 여성의 제도정치 참여와 정부정책 집행과정에의 참여를 포함한 여성운동의 궤적 60여년을 짚은 글도 있고(정현백, 2006a),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여년 동안 제도권에 입성하고 정부정책결정 과정과 집행에 참여함으로써 생겨난 양지와 음지를 성찰하면서 음지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제도권 참여를 계속해야하는 당위성을 피력하는 글도 있다(윤정숙, 2004). 그리고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성별관계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정희진, 2006)과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어떤’ 여성을 위한 것인지를 성찰해야 한다며 제도화 일변도의 흐름을 우려하는 글(호성희, 2007)도 있다. 이 글은 위의 글들을 토대로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의 흐름을 간략하게 짚고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쌩경쟁=生경쟁’ 체제 속에서 여연을 중심으로 움직여 온 여성운동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후 운동방향을 제안하려 한다.


한국여성운동의 궤적: 한국여성단체협의회 vs. 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2006a)은 해방60년을 맞이하는 한국사회의 여성운동은 ‘국제사회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성과는 여성가족부의 설립과 성주류화 정책의 확대로 가시화되었으며 이제 모든 사회담론의 영역에서 젠더(gender 혹은 성별)는 고려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준거틀로 등장했다’고 평가하였다. 그에 따르면 ‘해방공간에서부터 여성은 활발한 사회참여를 해왔으며 5,60년대에는 여성운동이 상대적으로 침체기를 겪기는 했지만 7,80년대 전반부는 여권운동과 여성노동자의 생존권 운동이, 그리고 80년대 후반부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진보적 여성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시기’였다.
해방 직후 조직된 한국사회 최초의 여성단체인 <건국부녀동맹>(이후 <조선부녀총동맹>으로 변경)은 전국적으로 80만명의 회원을 조직해내는 성과를 거두며 좌파정치적 입장을 폈다. 1948년 수립된 이승만 정권은 이런 <조선부녀총동맹>을 불법단체로 내몰았고 좌파의 세가 강했던 <조선부녀총동맹>에서 탈퇴한 우파성향의 여성들은 이승만의 조처에 힘입어 <대한부인회>를 결성했다. 정현백은 당시의 여성운동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정치권력 의존적’이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두 단체가 여성의제를 내걸고 공동연대활동을 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후 여성에 대한 처우개선, 여성의 지위향상과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 생활향상, 건전가정육성 등의 여성의제가 제출되었지만 급진적 의미의 여성의제는 70년대까지 대두되지 못했다(정현백, 같은자료).
1959년에 설립되어 생활향상운동, 여성지위향상운동 등을 펼쳐온 ‘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는 1970년대에도 여성복지사업을 주요한 사업기조로 두고 있었다. 반면 여성지위향상이나 여성복지사업과는 구별되는 여성의식이 1980년대를 전후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5년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여성인간선언’은 여성의 ‘단순한 지위향상이 아닌 인간해방이라는 전망을 둔 획기적인 변화’였다고 정현백은 말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여성주의 의식과 여성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여성 내부에서 터져 나왔고 이후 여성억압의 현장 중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해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족법 개정운동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런 배경 하에 여성학이 대학에 소개되었고 이에 자극 받은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여성문제와 사회문제에 눈뜨게 되었다. 1980년대의 진보적 여성운동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었다(정현백, 같은 자료).
1987년 민주화운동 확산 이후 시민운동 (혹은 신사회운동)이 등장,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 당시 ‘정치적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이고 생태, 시민권, 평화, 문화 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등장했다. 1987년 2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이 발족되면서 ‘새여성운동’이 등장한다. 정현백은 이 시점이 그간 민주화투쟁으로 결집해온 여성들이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재결집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여성운동은 이제 ‘다른 정치사회운동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가부장제 타파를 통해 양성평등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라고 표방하기 시작했고 시민사회운동과 민중운동 등의 다른 사회운동과는 ‘내부에서’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식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당시 여연을 발족시킨이들은 하향식이 아니라 기층여성과 함께하려는 것을 진보라고 보았다 (정현백, 같은 자료).
윤정숙은 이러한 ‘따로 또 같이’ 전략은 여성운동이 ‘합법적 방법의 진보성 쟁취를 추구하기’로 합의하면서 일어난 변화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때부터 여성운동은 반합법 정치투쟁방식에서 법, 제도화 과제로 그 중심을 이동했다. 여연은 이런 변화를 여성대중운동 중심으로 여성운동의 중심을 재편한 것이라고 보았다(윤정숙, 2004). 여성대중운동을 중심으로 재편된 진보적 여성운동은 많은 제도화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88년에는 ‘남녀고용평등법’, 1991년 ‘영유아보육법’, 1993년 ‘성폭력특별법’, 1996년 ‘가정폭력방지법’, 2000년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2005년 ‘호주제폐지’ 등의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 이후 여연은 성주류화 정책전개운동을 진행하기 시작했다(정현백, 2006a).
그러나 지난 20여년 간 이 같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지만 여성의 삶에 실질적인 개선이 있었는가라는 회의적 시각들이 있다. 남녀간 임금격차는 여전하고 여성 임노동자의 약 70퍼센트는 주로 저임금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가사노동, 양육노동,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전가되어 있다. 여성운동이 여성의 피해자성을 드러냄으로써 성차별해소를 어느 정도 이루기는 했으나 주류화로의 진입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남성과의 사회적 관계를 궁극적으로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이 모성성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몸, 섹슈얼리티, 건강 등에 관해서는 미약했다는 지적도 있다(정현백, 2006a).
김경희(2005)는 1987년 이후 20여년 간의 여성운동이 여성의 권리와 평등개념을 공론화하고 대중화시키기는 했지만 이것이 ‘어떤’ 여성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제기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희는 육아휴직을 포함한 모성보호정책은 대기업정규직 기혼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라고 비판하며, 정책개입 혹은 정책입안 과정에의 직접적인 참여의 정치가 여성운동의 제도화를 불러오면서 여성주의적 관점과 원칙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더 많은 여성들에게 운동의 성과가 돌아가지 않는 것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 또한 김경희는 상담소 등 직접적으로 관과 관계를 맺어온 단체들의 ‘여성운동가들 자신이 저임금 공무집행 실무자화’한 것을 자조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 17대 총선에서의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활동은 최초로 ‘여성’의원 10퍼센트를 넘기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것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기준에만 충실하였을 뿐 여성주의적 관점을 관철시키고 대중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지는 못했다고 비판한다.
여성의제를 전면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따로’를 전략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 내에서의 제도화 과제’로 여성운동의 중심을 이동해버린 것은 이후 여연이, 그리고 여연 중심의 여성운동단체들이 상대적으로 ‘제도화’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여연이 만들어질 때 여협과의 차별점으로 가졌던 ‘진보성’, 제도권과 정부에 대해 가져왔던 비판성이 점진적으로 퇴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제도화가 성주류화와 이를 위한 정부정책참여를 도운 긍정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알아서 조율’하고 ‘스스로 온건해지는’ 여성활동가들을 생산해 냈다는 윤정숙(2004)의 지적은 귀 기울일 만하다. 여성주체를 단지 이성애 남성주체의 대상으로 놓는― 남성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에 놓는― ‘아버지의 법’을 토대로 한 제도 자체를 치밀하게 비판하는 전략이 부족하면 제도에 접근할 때 여러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이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탄생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산물로 보지 않고, 본질적이고 생래적인 것으로 볼 때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이다. 이것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차별적인 규범을 토대로 ‘건강/비건강 가족’으로 이분화하고 가족제도의 ‘변화’를 가족의 ‘위기’로, ‘결혼의 해체’를 ‘가족의 해체’로 보는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건강가정기본법’과 같은 예는 여성운동이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제적, 이성애중심적 틀에 대한 비판없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면서 ‘국가페미니즘’화할 때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정숙(같은 글:68)은 여성운동에서 제도의 안과 밖은 분리될 수 없고 제도와 운동은 ‘둘이자 하나’인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제도 내 활동 자체가 아니라 ‘둘이자 하나’인 제도와 운동을 여성운동에서 어떤 관계로 만드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공간은 ‘하나의 상호연관된 공간’이기 때문에 ‘양자택일의 문제로 말해질 수 없는 공간’이라고 보고, 제도의 안과 밖이 ‘이중전략’의 공간으로서 ‘동전의 양면처럼 긴장과 협상이 경합하는 정치적 영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제도 내 운동을 완전히 폐기할 것이 아니라 제도와 운동이라는 두 공간을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어떻게 긴장시키고 강화시킬 것인가’를 중요하게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자신의 위치와 성공을 상대화, 객관화하기’, ‘자신을 유지시켜온 정체성 담론 전략을 재구성하기’, ‘지역과 일상 속의 실천을 통해 여성운동을 대중화하기’ 등을 통해 가능하다.
‘담론, 정체성, 제도와 운동은 주체인 여성들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다시 만들어지고 논쟁과 실천을 통해 재구성되는 정치적 과정’이다(윤정숙, 같은 글). 지금 한국사회에는 보편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정체성, 중층적인 정체성으로 구성된 주체가 겪는 문제들이 서로 경합하는 ‘차이’의 정치가 대두되고 있다. 제도권 진입과 함께 ‘보수화’되었다고 비판받는 여연과 그 여연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은 여성들간의 다양한 ‘차이들’과 그 차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느 만큼 자신의 의제로 포함시켜 낼 수 있을까? 정희진(2006)은 “차이가 발생시키는 긴장이 여성운동의 힘과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차이가 동등한 목소리로 재현되고 대표될 수 없을 때 이 긴장은 여성운동의 힘과 가능성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여연과 여성부가 중심이 되어 2004년 3월 ‘성매매방지법’을 통과시키자 본인들을 ‘성노동자’로 호명한 새로운 여성주체들이 이에 반발해 집회를 가졌고 여연과 여성부는 처음에 이들을 ‘포주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을 뿐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있지 못한 존재’로 바라보았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자는 이들의 요구를 여성부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이들은 급기야 ‘여성부 해체’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좀 더 오래된 얘기이지만, 90년대 중반 여연에 회원단체로 가입하려 했던 한 레즈비언인권운동단체가 결국은 그 ‘꿈’을 접어야 했다는 비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여성운동은 지금 어디에?

1997년 이후의 급격한 사회변동과 정치지형의 변화는 여성운동에도 ‘새로운 과제와 위기’를 불러왔다. 여성대표성 향상이나 여성의제의 법제화라는 가시적인 성과 이면에는 여성 고용불안정의 증가와 여성이 성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맥락 속에서 심화되는 빈곤의 여성화와 이주여성, 성노동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운동에 ‘새로운 진보성’이 요구되고 있다(김경희, 2005).
윤정숙(2004)에 의하면 ‘새로운 진보성’의 요구는 1997년 이전에 이미 싹을 틔우고 있었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 ‘진보성’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해지고 이때 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진보적 여성운동’에 대한 상을 그려내는 담론이 부재하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이론없는 실천’ 속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게 되었다. 1990년 중반 이후 등장한 ‘영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헌진보운동’에서 견지해온 ‘근대적 계몽과 동원의 코드’에 불려 다니기를 거부하면서 ‘개인과 개인적 삶에서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상상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정희진(2006)의 말처럼 다양한 주체가 자신들의 경험과 입장에 기반한 정치를 요구하고 주장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차이’가 긍정적인 ‘긴장’을 만들어 내고 운동을 ‘견인해 내는’ 결과를 낳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 여성운동은 진보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2007년 말에 치러진 17대 대선과 곧이어 2008년 초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를 거두자 사회운동진영에서는 한탄이 흘러 나왔다.
선거의 결과에 대해 ‘먹고사니즘’에 빠진 국민들의 보수화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비대해진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을 부추김당하며 제대로된 사회적/공공적 보호막도 없이 방치된 개인들이 서로서로 “쌩/生경쟁”하도록 내몰린 채 가족이기주의와 부동산 자산資産만능주의에 빠진 탓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과 중하층 및 빈곤층 국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되는 부유층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이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선출해 준 것은 이들을 뽑는 순간 자신들도 이들과 한 위치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모방욕망’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18대 총선에서는 지금까지 유일한 진보당의 자리를 지켜온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리되면서 ‘진보’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여성운동진영도 대선과 총선 이전부터 사뭇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노무현정권 시절 전직 대표 여러 명을 정부 관료로 등용시킨 여연은 전직 대표중 어떤 이가 현 여당인 한나라당 비례대표후보 예정자였었다는 얘기가 있었을 만큼 그 정치색이 심하게 분열되어 있어 보인다. 여협이 태생부터 보수정권과의 긴밀한 관계성으로 인해 보수여성단체로 규정 당해왔고 이러한 여협과의 차이가 여연의 ‘진보성’ 규정에 중요하게 작용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제 여연과 여협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이고 여연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를 심각하게 질문할 때가 아닐까 한다.
2007년 한미FTA협정체결을 위해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협정체결을 반대하였다. 여성노동자의 70퍼센트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협상이 타결되고 비준이 된다면 누구보다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여연은 한미FTA저지 투쟁에 매우 소극적으로 관여했다. 현재 여연의 공동대표인 정현백(2006)의 말처럼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 양극화가 해소된다고 해도 국민들이 만족하지는 않을’ 지도 모르고 이 만족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생각자체가 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전세값, 교육비, 의료비, 생활비 등 감당해야 할생활고가 이만저만이 아닌 여성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하기 전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여성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구조적인 틀과 이 틀을 강화시키는 권력망을 깨뜨리는 것으로 운동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현백(2006a, 2006b)이 주장하듯이 한국사회는 아직도 정치적 민주화의 완성과 분단이라는 민족문제 해결이라는 근대적 프로젝트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주장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국가의 근대화 프로젝트 상당부분을 여성단체가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페미니즘은 전략적으로 여전히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운동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호명해온 ‘여성’주체가 더 이상 단일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주장과 ‘보편’이라는 근대적 호명방식의 한계를 탈식민적이고, 탈근대적으로 질문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사회운동 진영의 남성들이 차이를 중심으로 헤쳐 모일 때 여성운동이 ‘여성’이라는 보편적 주체를 상정하고 그 구심점으로 모였다면(정희진, 2006) 이제 그것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이 성찰은 지금까지 여연을 위시한 여성운동단체들이 중심으로 두었던 여성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사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관점이 ‘함께 말해질 수 있을 때’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운동이나 정책도 ‘보편적인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여성운동이나 여성에 관한 정책이 ‘보편적인 여성’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게 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울산현대자동차의 여성식당노동자들이 남성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 노조와 사측의 합의로 대량해고 되었을 때 ‘노동자는 모두 하나’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여성부와 여연을 중심으로 한 여성단체들이 ‘성매매’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상품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근절되어야 한다고 보고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했던 한편 ‘성매매 업소’ 여성노동자들이 이 법에 반대하면서 ‘일하고 먹고 살’ 노동권을 외치며 여성부 해체를 외쳤을 때 ‘여성은 모두 하나’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하의 여성운동?=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하의 여성운동!

선거결과가 나오고 다각도에서 이명박 정권의 성격에 대한 분석이 나왔다. 이명박은 “개발 마피아”(김완, 2004)이고, 정책은 실종시킨 채 개발차익에만 눈이 먼 “디벨로퍼”(김진애, 2005a)이며 공공성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가진 “문화독재(자)”(김진애, 2005b)이고, “친기업적(친자본적)”이며(채만수, 2008), “효율이 아닌 효과를 추구하는”자이고(홍성호의 허환주 인터뷰, 2008), “신개발주의(자)”이자 “반환경적”이며(홍성태, 2004), 문화를 “대파괴”하는 자(홍성태, 2008)라는 등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명박은 모든 것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그 핵심 원리 중 하나로 가지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신자유주의는 채만수(2008)의 지적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부터 착착 진행되어 오던 것이고 단지 이명박 정권에서 아무 거름망 없이 노골화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 하의 여성운동은 바로 노골적으로 실체를 드러낸 신자유주의 하의 여성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가부장체제 안에서 남성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여성운동이 많은 여성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될 또 하나의 적인 자본주의, 그것도 무엇이든 ‘낙후된 것’으로 만드는 가공할 힘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맞붙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성운동은 남성과의 사회적 관계를 바꾸어 놓는 운동이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이 협상력과 가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독자적인 경제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조주은(2004)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경제참여율만 해도 51.2퍼센트가 넘는다(2004년 기준).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7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저임금직에 종사하고 있고 60.8퍼센트가 주5일제 노동적용 대상이 아닌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2006년 기준).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전담자’의 틀이 전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사회적 곤란과 곤경’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쌩경쟁=生경쟁’ 체제에서 기혼여성노동자들은 본인의 ‘生’과 가족의 ‘生’을 유지하기 위해 임노동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에는 가사노동을 하고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에는 임노동을 하는 휴식없는 노동의 연속으로 내몰리고 있다(호성희, 2007; 조주은, 2007).
여성은 가부장적 관계 속에 위치해 있고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와 결탁해 있으며, 가부장제의 근간인 남성(중심)주의는 다시 민족주의, 인종주의와 결탁해 있고, 남성중심주의와 결탁해 있는 근대성은 다시 보편주의와 합리제일주의, 이성제일주의, 개발주의와 결탁해 있으며, 이것은 또 이성애주의와 모성주의와 결탁해 있다. 정희진(2006)은 “공적인 영역에서 아무리 제도화가 되어도 사적인 영역에서 남녀간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그 변화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에게는 남성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성별이해(gender interests)를 실현하기위한 운동―흔히 ‘근대적 여성주의’라 불린다―을 해나가는 동시에 자신을 가부장제가 기획한 남녀의 이분화된 체계에 고정시키지 않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성운동이 생물학적 여성의 재현과 ‘가부장제가 기획한 남녀라는 이분화된 체계’의 재강화를 중심에 두어서는 궁극적인 여성해방이라는 과제는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윤정숙(2004)의 주장처럼 바로 지금 ‘여성(주의)운동에서 진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색과 답을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여성운동은 여성재현의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의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다른 맥락에서의 불평등과 착취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여성운동은 부르주아 여성집단의 이해를 도모해 줄 뿐일 것이다. 부르주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여전히 여성을 모성, 이성애, 여성성 속에 가두는 구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이제 모성과 이성애, 여성성 밖에 있는 다양한 여성주체들을 불러내야 할 때이다.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와 나경원은 우리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것인가? 우리와 그들이 같은 주체인가? 이 주체들은 같은 맥락 속에 있는가? 우리는 지금 유례없이 많은 질문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세세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이중의 착취구조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하기만 한 많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여성농민, 이주노동자, 장애여성, 비혼여성, 레즈비언, 양성애 여성, 성노동자 여성 등의 삶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해내야 한다.
채만수(2008)의 ‘진보신당’에 대한 비판은 현재 여성(주의)운동에도 유사한 성찰을 갖게 한다. 채만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물론 합법공간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또 거부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더 많은, 더 넓은 합법공간을 쟁취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중심을 합법공간에 건설하려는 전략은 폐기되어야 한다. 부르주아 합법공간에 건설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중심이란 그것이 아무리 ‘변혁적’이니 뭐니 하는 수사로 포장되어 있더라도, 이미 1987년 이후의 경험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은 기회주의와 사민주의, 출세주의의 탑을 쌓을 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차제에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정치중심을 어디에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돌아보면서 또 다시 합법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자.”

제도화를 통해 젠더관점의 주류화를 이뤄내는 것도 특정 맥락 속에서는 유용하고 필요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제도화 움직임이 틀렸고 그것이 여성들의 이해를 전혀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만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에 대한 위계화와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는 권력망 자체를 깊이 성찰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소위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여성운동과 시민운동’, ‘여성운동과 평화운동’,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등 어떤 범사회적인 운동이 있고 여성운동은 여기서 하나의 교차적 준거지점으로 고려될 뿐인 사고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제도화된 영역에서 저항의 공간까지 혈관을 뻗치고 있는 이분법적 틀을 깨고 젠더를 생산/재생산하고 소수자를 생산/재생산하는 권력망 자체를 해체하고 대안적인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운동의 어느 영역에서건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체화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주체들 하나하나가 규범적 준거점의 이산을 경험하고 이것을 통해 여성주의적 주체로 거듭날 때 ‘제도영역’을 포함하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전유하고 전복시키는 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년여 동안 나는 한국땅을 떠나 부유하고 표류하는 이주자의 삶을 살았다. 때문에 이 기간동안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과 소식을 동시대에 경험하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인가를 자기검열하게 만들었다. 보다 적합한 다른 이에게 글을 부탁할까 하는 생각이 글을 쓰는 중간중간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자기 검열이 어쩌면 내가 그 기간 동안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운동에 대한 어떤 비판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2년여동안 나도 내가 비판하는 이 운동의 한 복판에 있었고 그 때 나와 한 솥밥을 먹던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곳에서 그야말로 ‘뼈빠지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이 글을 통해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틀렸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단지 성적 소수자이고 마흔이 내일모레인 비정규직 비혼 여성노동자인데다 늦깎이 공부를 하느라 시간과 돈의 지출이 이만저만이 아닌 나의 처지와 입장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식의 운동방향에 나는 불만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혹은 맥락을 같이하는 불만의 목소리들을 많이 접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맺으려는 지금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쨌든 글의 정리를 위해서 위에 인용한 채만수의 글을 수정인용해 본다.

“우리는 물론 제도공간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또 거부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더 많은, 더 넓은 제도공간을 쟁취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중심을 제도공간에 건설하려는 전략은 폐기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법’을 토대로, 남/녀 이분법 체계를 토대로 한 제도공간에 건설하는 여성/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중심이란 그것이 아무리 ‘변혁적’이니 뭐니 하는 수사로 포장되어 있더라도, 이미 1987년 이후의 경험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은 기회주의와 타협주의, 출세주의의 탑을 쌓을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계급의 정치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차제에 여성/노동자계급의 전략적 정치중심을 어디에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 가를 다시금 돌아보면서 또 다시 제도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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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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