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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육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평론  제36호
이철호/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


1. 교육이 미쳤다

햇볕이 따가운 5월 24일 토요일, 여의도 공원, 오래된 습관처럼 전교조는 창립을 기념하는 전국교사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서 교사들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전면 전환시키기 위해 투쟁할 것, 농어촌교육지원특별법과 교육격차해소특별법 제정, 교원평가 법제화와 연금법 개악 저지, 교육재정 확충과 부족 교원 충원,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중단 등을 위해 온 나라 대행진과 100만 국민 서명 운동을 전개한다는 결의를 하며 예의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그 노래는 전교조의 역사와 함께 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이며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그러나 반교육의 벽을 부수고 참교육을 실현하자는 교직원노조가 세워진 지 20여년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반교육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아니 더 높아지고 두터워지고 있다. 학벌사회는 강화되고 , 로스쿨을 통하여 신종 대학서열체제가 구축되어가고 있으며, 입시경쟁은 내신 수능 논술의 트라이앵글에서 영어를 더한 죽음의 피라미드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공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교육은 이제 노골적으로 시장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다. 전국적인 일제고사가 부활하고, 촌지와 부교재채택료 등 오래된 망령들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0교시와 강제야간자율학습, 심야 보충수업을 넘어 사교육산업에 학교건물과 학생을 내맡기는 형태의 야간방과후학교라는 변종이 시작되고 있다. 이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교육이 미쳤다’며 침묵하는 교사들과 사회를 향해 촛불을 들었다.
교사대회를 마치고 같은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교육‧의료 민생파탄 이명박정권 규탄!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회를 통해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투쟁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고, 특히 공공부문 공동투쟁에 대한 조합원 결의를 통해 이명박 정권의 교육, 의료, 식량, 물가 등 총체적 민생파탄 정책에 맞서 공공부문 시장화, 사유화 저지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그리고 집회를 마친 이들은 주말 오후 텅 빈 여의도를 등 뒤로 한 채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2. 오래된, 그러나 모습을 바꾼 시장화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오래된 그러나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되살려 냈다. 경제성장 몇 %와 수출 얼마 달성이라는 국가적인 목표, 기업과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성장발전, 이를 수행하기 위한 강력한 법질서 확립, 전국차원의 대규모 토목공사 등. 변형된 것이 있다면 개발독재에 신자유주의의 외피가 덧씌워진 것 정도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신자유주의는 교육에도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터 선도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교육은 한발 더 나아가 오래된 것과 가장 첨단의 것이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다.
충격처럼 다가온 영어 몰입교육은 새로운 형태의 유전자조작 쥐가 탄생했는지 아연하게 하더니, 대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영어로 평가 등급을 매기겠다는 국가차원의 영어 평가시험 준비가 착착 진행 중이다. 수업을 영어로 하는 교사를 매 해 3천 명씩 양성하고 영어 수업 외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한다고 하더니, 교사의 조건은 계약직 단기근로라고 한다. 이 같은 영어 광풍은 영어 공용어 또는 상용화의 전 단계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기 유학 허용 등을 규제 완화 정책에 반영하고, 경제자유구역 확대, 외국학교 설립 추가도 맥을 잇는다. 미국 비자 문제와 연관하면 미국단기어학연수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영어가 자본이며 계급화의 도구로 자리매김할 조짐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은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 양성을 교육의 목표로서 노골화하는 것, 이를 위해 학교 교육 내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 학교 교육에 시장 기제를 도입하여 지불 능력에 따라 원하는 학교 교육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학교 체제를 다양화하는 것, 노동유연화를 통해 시장 경쟁 체제를 뒷받침하고 재정 절감을 추구하는 것 등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둘러싼 과정이 다소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장화와 계급화가 어디까지 간 것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약이나 계획과 같은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바라보자.
2008년 3월 6일 아직 입학의 흥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에 각 시도 교육청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같은 시험문제로 치르는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애초 진단평가를 실시하면서 정부는 학교의 모든 정보는 감추어져서는 안되며, 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사는 실종되어 버렸고, 어떠한 후속 지원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학교별 혹은 개인별 성적을 발표했다. 그 결과 울산교육청은 전국최하위라는 사실을 오히려 광고하면서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부추기는 한편 학교를 들볶아 경쟁에 나서도록 했다. 미처 진단평가의 문제에 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학교는 이제 현실적으로 드러난 학교의 서열을 올리기 위해 학생을 수단화하는 서열경쟁에 들어갔다.
학력의 변인이 학생개인이나 학교에 의거하기보다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특히 개별학교내의 평가가 아니라 전국단위의 평가에 의한 서열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기에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것이 지금까지는 암암리에 이루어져왔으며, 이를 집단적으로 드러내 놓은 고교등급제는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문제는 학교만의 서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서열을 확대해보면 그 지역의 서열로 이어지고, 축소해보면 지역의 학생 서열, 나아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의한 서열이 된다. 성적이 공개되고 객관적인 지표가 나오면 대학에서는 이를 반영하게 된다. 이제 교사와 학생은 이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 시장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청사진이 4.15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통해 드러났다. 추진계획은 3단계인데, 1단계는 4월중으로 29개 지침을 즉시 폐지하고, 2단계는 6월중으로 규제성 법령 13개 조항을 정비하고, 3단계는 7월 이후에 추가 발굴 및 각종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의 입안과 실행은 청와대에서 이루어졌다. 핵심인물인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학교가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을 할 때, 한국교육의 문제는 해결된다. 그동안 다양성을 저해한 것은 교육부다. 그러니 교육부의 지침을 없애서 단위 학교가 자유롭게 이것저것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학교마다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어 한국교육은 좋아진다.”고 그 결과를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광고와는 달리, 학교는 10월의 학력고사를 염두에 두고 학교자율화 조치를 백분 활용하고 있다. 즉 10월 학력고사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우열반, 0교시, 야자, 사설 모의고사 등을 하나하나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학교의 교사들이 0교시, 야자가 교육적인 효과가 있어서 밀어붙이기보다는 이 정도라도 성의를 보여야 학부모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학생들만 죽을 맛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는 그 의미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학교라는 이름이 남아 있지만 실제 내용은 학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방과후학교는 학원강사에게 맡기거나, 소년 동아니 소년 조선이니 하는 어린이신문사들의 수익 보장을 위해 존재하게 되고, 각종 부교재 출판사와 교복 빅3업체에게 시장을 제공한다. 학생은 기본적으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라는 이름의 건물에 갇혀 지내면서, 자율을 빙자한 보충과 야자를 빠짐없이 하고, 수업은 성적에 따라 유학반이니 SKY반이니 하는 우등반과 열등반으로 나누어 진행하며, 틈날 때마다 학원이 만든 모의고사를 보아야 한다.
학교는 위협 반 사정 반으로 학생들이 학원을 끊고 학교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아마 다음 달쯤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끊고 학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교육이 목적을 상실하면 동일한 시장을 두고 학원과 학교가 경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먼저 교육이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3. 포장지는 위장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는 교육 시장화와 관련하여 주로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재생산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인적자원논리를 유포하는 데 적극적이며, 전경련은 전교조가 반자본 교육을 한다며 경제교과서를 직접 만들어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학벌 사회를 형성하는 서열화된 학교체제를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는 문제, 즉 학벌 서열체제 타파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어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우회적인 방식에 더 이상 기대지 않는다. 교육활동 자체가 이윤 창출 과정으로 재편되고 있다. 사교육을 동네 보습으로 본다면 그건 보육 수준일 뿐이고, 주식에 상장한 몇 개 메이저 사업체들이 사교육을 재편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육정책도 바뀌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자율화조치가 발표되던 같은 날(4월 15일) 오전에 사교육 1위 메가스터디의 2008년 1사분기 영업실적이 공시되었다.

<표 1> 2008년 1사분기 메가스터디 영업실적


실적
전기(07년 4분기) 대비
전년 동기(07년 1분기) 대비
매 출 액
490억원
△ 36.96%
△ 34.33%
영업이익
163억원
△ 81.36%
△ 34.05%
순 이 익
122억원
△ 33.93%
△ 65.19%


관계자나 투자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운 숫자다.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30% 이상 증가했으니 말이다. 이대로만 계속 간다면 2008년 목표치인 매출액 2천억원, 영업이익 6백억원 달성은 식은 죽 먹기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운하관련주나 다른 주가들은 들쭉날쭉하거나 죽을 쑤고 있지만 교육만은 탄탄대로다. 영어 돌풍, 대학입시제도, 고교다양화 등 교육이 언론에 조명을 받을 때마다 교육 산업체의 주식가격은 승승장구할 뿐이다.
21세기 한국사회는 경제가 지배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고용 안정이 위협당하고, 국가경쟁력을 위해서 교육기회가 차단당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법이 폐기되고, 기업의 이윤을 위하여 의료가 상품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경제학은 분과학문의 하나가 이미 아니다. 학문위의 학문으로 여타 학문의 방향과 결과를 지시하고 있다. 경제학은 경제지표나 현상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와 정치를 재단하고 있으며 통일과 외교 정책을 수립한다. 심지어는 종교와 결혼과 직업의 선택 역시 시장에서의 거래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경제학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가치가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특히 교육의 시장화는 경쟁력, 수월성, 효율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경쟁이나 수월성, 효율성 등의 수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미 모두에게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포장지로 시장이라는 내용물을 포장하였다.
대선국면에서 이명박 후보가 발표한 교육공약은 ‘학교만족도 두 배, 사교육 절반’이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은 대학입시의 자율과 고등학교 다양화였다. 자율과 다양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모두가 다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데에까지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니 그러면 대학선발제도를 없앤단 말인가? 하여 대학입시 자율화의 정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입시 자율화의 정체는 이미 인수위의 발표를 통해서 확인되었듯이 대학입시에 관한 교육부의 규제를 폐지하고 각 대학이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수능을 점수제로 되돌리고, 모든 전형절차를 대학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 대입제도의 요체는 대학별 전형에 있다. 수능등급제, 내신확대 등은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전형 자료의 종류와 사용 방법을 나열한 것일 뿐이다. 대학은 여러 자료 중 이용하고 싶은 자료를 선택하고 그 비중을 정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자율은 오로지 대학의 자율일 뿐이어서 대학입시는 전적으로 대학의 학생 선발권만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나마 규제가 남아 있는 영역은 지필형 본고사, 기여금 입학제, 고교 등급제뿐이며 이는 개인의 학업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한 선발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완전자율이라는 의미는 이마저도 폐지하자는 것이며, 이는 교육을 통해 가난을 대물림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자율을 보면, 자율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곳은 시장이다. 자율은 시장의 자율이고, 그 조절기제는 가격이다. 이 과정에 시장과 가격이 아닌 국가의 통치행위나 사회정의와 같은 가치가 개입하면 자율이 깨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은 마찬가지 범주로 환원되어 버렸다. 입시의 병목현상을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기구를 통해 조절하면 되는 것이지 국가의 제도나 교육기회 균등과 같은 가치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규제이며 자율에 대한 방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 또는 이성에 따르는 것이라는 자율(自律 Autonomie)의 정의에도 위배되지만, 시장 논리에 따르더라도 맞지 않다. 가격기구가 자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독과점과 같은 지배력이 없어야 하며, 대체재(代替財 substitutional goods)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과 자본마저 위계서열화 되어있는 현대 사회에서 직업을 통해 권력 분배 기능을 하는 대학은 이를 대체하는 대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며 등급을 판정받아야 한다. 대학 서열체제와 학벌사회는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이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빚고 있는 지는 서울대학이 벌인 통합논술 사태를 기억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개 대학 전형요소의 하나에 불과한 논술이 모든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흔들었으며, 교육청의 중점 사업계획을 뒤집어 버리고, 사교육 산업의 주 메뉴를 바꾸어 버렸다. 한국의 교육 어디에 자율이 있으며,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 누구에게 자율이 있는가?
수월성과 효율성이든 자율성과 다양성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교육을 수단화하는 것이다. 이의 존재 근거는 경제 성장, 인적 자원이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참혹한 인적자원의 논리는 학교의 교육활동을 분업화된 생산과정으로 재편하고 있다. 교사의 교육활동이 더 이상 총체적이고 전면적이기를 부정한다. 업무는 영역별로 세분되고, 직무의 위계별로 분업화한다. 분업은 개인에게 업무량을 할당한다. 할당된 작업량은 성과 고과에 계량화되고 평가된다. 평가 결과는 등급이 되며 수당으로 지급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은 자본이 된다. 자본으로서의 지식의 획득은 타인과 소유의 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며, 그 지식을 통해 이윤획득 경쟁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양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있고, 이 등급에 따라 직업이 배분된다.
이를 사회적으로 계량화하여 판정하기 위해, 시장이 학부모라는 소비자들에게 학교라는 상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고사는 필요하다. 일제고사 결과는 모두를 서열화시키기에 충분해야 하며, 그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당연히 공개된 정보에 의해 각기 다른 상품은 다른 가격을 가져야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는 다양화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프로젝트는 이를 지향하고 있다. 공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무는 폐기되어야 하며, 학교는 수완이 좋은 경영인에 의해 경영되어야 한다. 학교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위한 경쟁을 위해서 경영상 불필요한 규제는 폐기되어야 하며, 학교자율화 조치는 이를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 된다.
이러한 불평등 장치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이 지역 발전 논리이다. 지역자치단체장들과 지역 정치인들은 시장형 학교를 지역에 유치함으로써 특권화된 학교에 대한 접근기회는 물론 부동산 가격 상승효과 등이 있을 것으로 은연중에 선전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도 이는 통용되었으며, 같은 지역에서도 개인들이 속한 계급과 그에 따른 형편이 다양한데도 그 차이가 경제적 이윤추구에 기반한 지역 발전 논리 앞에서 무력화되고 만다.


4. 핵심에 일제고사가 있다.

제한된 임기를 가진 선출된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 특히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야 할 교육에서는 그러하다. 이전 정부에서는 단기적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을 공략하여 개혁을 가시화하는 전술을 보여 왔다. 그것이 대학입시제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약에서부터 대학의 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 대학입시에 관한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시장화를 추진하기 위한 무기를 어디에 숨겨둔 것일까. 바로 일제고사이다. 지난 3월의 일제고사는 정교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으며, 다음은 10월이다. 학년초인 3월 시험이, 아직 가르치지 않은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어서 교사가 책임을 면했다면, 10월은 가르친 학생들에 대한 평가이기에 시험장에 내몰리는 것은 학생들이지만 평가당하는 것은 교사와 학교다.
제한된 조건에서 성적을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평균성적을 올리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몇몇을 시험에 참가하지 않게 하는 것, 30명이 1점씩 올리는 것보다 바닥을 치는 학생 1-2명이 평균을 깎아내리지 않게 하는 게 손쉬운 방법이다. 이는 교사의 도덕이나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일제고사의 경험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영국 등에서 일어난 보편적인 사례다. 서열을 평가하는 일제고사 결과로 학교의 서열을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것을 잘하는 학교와 교사일수록 시장에서 선호하는 학교와 교사가 될 것이다. 더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쫓겨나는 학생들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들이다.
학부모들은 어떨까? 같은 학군에서 서열이 낮은 학교를 배정당하는 것을 누가 참겠는가. 아예 그 지역을 떠나거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면 교육청에 가서 전학시켜 달라고 농성하는 수밖에. 해결책은 간단하다. 평준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평준화를 해체하고 학교서열을 현실화하여 명문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로 등급을 나누는 것밖에 없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아도 이런 상황은 교사와 학교에 대한 객관적으로 계량화된 평가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이어진다.
이즈음에서 이명박 정부가 교육에 관한 권한을 교육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넘겨주고 있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교육청 관료들을 개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로 보면 무능력한 교사나 교육청 관료나 다 개혁의 대상, 뽑아버려야 할 전봇대이다. 이를 보여주듯 정부는 교육청을 학교지원센터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교육청이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학교가 하는 개혁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라는 의미이다.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개혁의 파트너는 교장임에 분명하다. 개별 사업장으로서의 학교를 경영하는 교육자가 아닌 경영형 교장. 이런 교장들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교장은 더 이상 자격이 필요하지 않기에 교장 공모제는 확대되어야 한다.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데 제약을 두어서는 안되기에 자율화 조치가 필요하다. 제한된 예산을 최대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단위학교책임경영제는 실시되어야 하며, 예산의 대부분을 소모하게 하는 교사들은 조정되어야 한다. 상급관청의 지배도 없어져야 한다. 교육청의 힘은 학생배정권과 예산배분권에 있다. 그러나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게 하고, 선택한 학생의 수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면 되는 데 교육청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간단한 이치를 이미 무너져 버린 영국의 학교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전교조는 확산되고 있는 교장공모제에 관하여 이명박 정부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정리해 보면 일제고사 결과는 학교선택의 지표가 되며, 다수의 소비자가 선택한 학교는 시장에서 살아남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자에게만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교육기회가 열리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조정당하는 그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학교의 지역간 격차는 확대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산적해 있고,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이 보인다. 대안역시 문제만큼이나 다양하게 제출된다. 장기적인 대책부터 단기적인 처방까지, 근본적인 대안부터 일면적인 처방까지, 학교내적인 진단부터 사회전체의 변혁에 이르는 대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물론 자율과 다양을 왜곡하는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 그리고 대학입시를 폐지해야 한다.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는 교육에 탈주공간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학벌사회는 이러저러한 얕은 계책으로 무너질 만큼 허술하지 않다. 개별적인 학교나 학부모와 학생의 결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일제고사로 가시화되는 학력서열화 경쟁체제에 있다. 교육을 시장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동하게 될 일제고사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 진보진영의 당면 과제이다.


5. 시장화, 저지를 넘어 사회화를

스스로 설정한 경제성장의 목표가 정권 유지에 족쇄가 되어버린 이명박 정부는 이미 그 파괴적인 결과를 드러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답게 공공부문 시장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민영화, 공기업의 단계적 민영화, MBC 등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한 민영화, 유사 공공기관의 통폐합, 연기금기관의 통합 관리를 통한 공기업 구조조정, 의료의 시장화 등은 이미 공약과 인수위를 통해 그 방향을 드러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감찰기구를 동원하여 공기업에 표적 감사를 하거나, 이사회를 동원하여 공영방송의 사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정책의 실패를 규탄하는 국민들을 배후 세력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꼭두각시놀음의 인형으로 여기는 망발도 자행하고 있다.
교육은 태풍의 중심에 있다. 하기에 사안별 분리대응이나 애매모호한 입장으로는 수세에 몰리거나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입시경쟁 심화는 반대한다면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나 교원평가는 지지한다거나, 교육부 해체에 반대하면서 주요 권한을 다시금 중앙정부에 쥐어주자는 따위의 주장이 그것이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교간, 교원간, 학생간 극심한 혼란과 경쟁을 유발할 것이 분명하고, 소수의 가진 자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저항이 불가피하다.
또한 교육의 문제만 분리하여 대응하거나, 교육문제를 교육주체라고 일컬어지는 교사나 학생, 학부모에게만 맡겨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2008년 5월 15일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가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출범했다. 기존의 학부모 운동이 학교의 민주화를 진전시킨 공은 있지만, 동시에 수요자 선택권 등의 논리에 휘말려 교육의 시장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을 가진 이 단체는 노동자와 민중이 더 이상 방관자나 수혜자로서 교육을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교육과 교육운동의 주체가 될 것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업으로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 계획을 시장화를 위한 조치라고 규정하며 이에 반대하는 학교앞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교육문제는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세계화는 자본간의 국경을 없앴으며,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욕망은 산업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나아가 국가의 역할을 자본이 대체하고 있으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소비자와 수요자의 권리와 의무로 대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적자원과 공적영역은 파괴되고 있으며, 공공부문을 상품시장으로 넘기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공적자원·공적영역에 대한 시장화는 이미 공약을 통해, 인수위를 통해 교육, 보건의료, 물, 에너지, 통신배달, 방송, 금융 등에서 총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영화 저지, 구조조정저지, 고용안정 등 구호와 요구는 현실적일 것 같지만, 그것은 현상유지이자 결과적으로는 후퇴가 될 수밖에 없는 요구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투본은 그 한계가 분명하며, 필요에 의해 조직되고 있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연대체 역시 구조조정 저지 등의 구호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분명하다. 오히려 공적자원과 공적영역이 원래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자본의 이해를 위한 사적영역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며 공적인 영역임을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나아가 교육, 의료, 물 등을 넘어 에너지, 주택 등의 적극적인 사회화를 제기해야 한다.
 

2008-06-20 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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