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변혁 주체: 코뮌과 노동자계급

박영균󰋯건국대 강사/ 철학

1. 변화된 지형과 새로운 모색들

오늘날 한국의 좌파들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노동자계급을 주력 부대로 하는 ‘계급혁명’이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행기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레닌이 말했듯이 ‘혁명적 사회주의’와 그렇지 않은 기회주의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잣대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좌파들은 더 이상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력 부대로 상정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까지 이것을 고수하는 소수의 좌파가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분화되어 온 한국의 좌파들은 ‘노동자계급’이 근본적으로 혁명적일 수 있는가를 의심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파트너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에서 대공장 노동자들은 사회의 기득권 세력처럼 비쳐지고 있다.
이것은 네 가지의 상황 변화를 반영한다. 첫째, 현상적으로 대공장 노동자들은 자본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이 노동자계급의 60%대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에 대항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관료화된 대공장노동자들의 이익단체가 되어가고 있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며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불안정한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민주노총조차 ‘차별철폐’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냐를 둘러싸고 이견을 표출시키고 있으며 대공장을 중심으로, 대공장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런 평가는 가장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현장 좌파들(신문그룹)조차 인정하고 있다.
둘째, 자본주의의 견고성과 유연성, 그리고 제도화의 효과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포섭이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을 의회와 사회적 협의체계, 공장과 생산체제를 통해서 포섭하는 반면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들과 실업자, 잠재적 실업자들을 주변에 포진시켰다. 정규직 노동자를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직장과 임금으로 보장하는 반면 비정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양산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체제 내로 흡수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노동자는 자본 지배 구조의 한 지주를 형성하고 있다. 전통적인 현장 좌파들은 개량화-관료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신좌파적 좌파들은 대공장 중심의 노동자의 혁명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대자본주의는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갈등과 사회적 의제를 낳고 있다. 그것은 적대의 선이 더 이상 단일하지 않으며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 환경, 인권 등 다양하게 형성된 갈등의 양상은 더 이상 노동과 자본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특히, 이와 같은 자본의 공세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투쟁의 고리를 만들어 놓고 있다. 따라서 노/자가 아닌 ‘보편적 가치’를 둘러싼 투쟁의 양상과 사회적 의제를 둘러싼 투쟁이 관심이 초점이 되고 있다.
넷째, 더욱 근본적인 회의로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발본적 해체와 새로운 ‘길 찾기’이다. 현실적으로 드러난 현존사회주의의 실체는 전체주의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맑스적 테제는 전체주의적 현실과 닮아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길 찾기’가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이상 사회주의의 사상적 정체성이 되지 못할 때,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력이라는 맑스적 테제 또한 의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폐기와 코뮌의 부활은 이와 같은 지형과 관련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제적 모습은 공산당에 의해 지배되는 ‘전체주의’였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지배만큼 반인간적이며 반자연적이었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현실의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을 또 다른 피지배자로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통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계획경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문제는 또 다른 국가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변혁은 권력 그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코뮌’이어야 하고 ‘자율적인 공동체’이어야 한다. 국가 권력이 존속하는 한, 해방은 영원히 미루어질 뿐이다.
앞의 세 가지는 오늘날 변화된 자본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정통 맑스주의는 더 이상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낡았으며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것은 그들의 관점이 노/자라는 계급 모순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관점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색은 네 번째의 근본적인 사상적 정체성의 와해와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오늘날 변혁 주체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논의들이 한편으로 사회적 현실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맑스주의의 해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주의의 변혁 주체의 문제는 단순하게 현실 사회의 변화만으로 논의될 수 없다. 그것은 맑스주의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재구성과 확장이라는 문제의식 없이 논의될 수 없다.


2. 봉쇄된 질문,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코뮌

3. 코뮌을 창출하는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

4. 적대의 중심성이 없는, ‘사후복수’로서 코뮌주의

5. 변혁의 중심 주체로서 노동자계급

6. 코뮌적 장치에 근거한 ‘사회적 생산’을 사회화하는 사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