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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위대한 대한국민!

진보평론  제36호
편집위원장

jb36.jpg jb36.jpg(597 KB)


이렇게 빨리 터질 줄은 몰랐다. 보수우파의 집권으로 시작될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가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한밤 서울 도심을 밝히고 있는 촛불 속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새로운 역사적 경험을 창조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국민항쟁의 경험을 넘어서서 2008년 대한국민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이를 무시하려는 어느 정치세력도 국민으로부터 단호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확인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수십만의 국민이 치켜들고 있는 민주주의의 촛불을 바라보면서 대한국민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 겨우 100일이 조금 지난 이명박 정부는 출발부터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의 실체를 다 드러내 보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10년 동안 정치적 능력을 잃어버렸다. “강부자”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2와 3 세대의 보수우파의 인사들은 부동산 투기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재산을 챙기고 이를 향유하는 데에만 골몰해 왔을 뿐, 이른바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정치적 능력을 키우는 데에는 게을렀다. 이런 정치적 무능력이 100일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치적 무능력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한국사회의 보수세력들의 정치의식이 여전히 87년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87년 체제 이후 20년간의 한국사회의 질적인 변화 속에서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국민들로부터 “경제 살리기”로 지지를 받아 집권했지만, 재벌을 비롯하여 기득권 세력에게 더 많은 것을 쥐어주려는 반국민적 경제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것은 말뿐이고 실제로는 국민을 물리력을 동원하여 찍어 누르려고 하였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쩔 수 없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 근본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반민주적 세력에 불과하다.
보수세력의 이러한 반민주성과 정치적 무능력은 바로 국민의 심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국민의 심판은 보수세력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의 심판에 직접 나선 것은 다른 정치세력들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른 정치세력들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좌파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얼마나 형편이 없으면 국민 대중이 직접 나섰는지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촛불 집회에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 쇠고기 재협상과 이명박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서있지만, 이 촛불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좌파들은 이 촛불이 좌파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협소한 종파주의적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대오로 연합하지 못하고 있는 좌파들은 국민의 촛불 앞에서 각성해야 한다. 좌파 세력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지도한다는 그 어리석은 오만함에서 깨어나 오늘날 한국의 좌파는 대중으로부터 배워야한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이미 그 출발에서부터 ‘안정적인’ 보수정권의 시대가 아니라 다양한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불안정한 각축과 혼란의 시대임을 노정하고 있다. 좌파진영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사회를 더 높은 사회진보의 단계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오고 있으나, 좌파진영은 제 값을 하고 있지 못하다. 정말 유감이다. 오늘 대중은 촛불을 들어 한국사회의 희망을 다시 만들었다. 대중이 만들어 놓은 이 희망에 부응하기 위해서 좌파는 종파주의의 벽을 허물고 함께 할 수 있는 연합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이는 대중들이 우리 좌파에게 요구하는 정언명령이다. 예상보다 다급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면서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조속히 좌파의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을 추진할 것을 각 좌파 정치조직들에게 촉구한다. 낡은 틀과 관념을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좌파정치의 새 길을 열어가기를 고대한다. 무엇보다도 좌파의 분열과 종파주의의 기본고리가 되고 있는 개량과 변혁, 사민주의와 코뮌주의의 대립틀을 털어버려야 한다. PD계열은 NL파의 종북주의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량적 사민주의와 변혁적 코뮌주의의 대립틀이 NL파의 종북주의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알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낡은 틀에서 벗어나 범좌파적인 정치연합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보수시대에 좌파정치의 새로운 과제와 정치연합을 모색해보려는 취지에서 진보평론 36호 특집은 “보수시대 좌파운동의 재구축”으로 잡았다. 조희연, 이광일, 박영균의 글은 좌파정치의 재구성에 대한 일반론적인 수준의 글이다.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범좌파정치연합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박이은실, 이철호, 김태연, 장석준의 글은 여성, 교육, 노동, 정당정치 등 사회부문에서의 좌파정치의 과제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장석준의 글은 진보정당운동에 대해 논하고 있기는 하지만, 좌파정치의 재구성에 대한 일반론적인 논의와 연결되어있다. 이 글은 개혁/혁명 정당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범좌파정치연합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번 호 특집인 “보수시대 좌파운동의 재구축”을 단순한 이론적인 수준의 글로서 읽지 않기를 바란다. 범좌파정치연합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제안하는 실천적인 안목 속에서 읽기를 바란다. 이번 호 특집이, 이후 범좌파정치연합을 둘러싸고 활발하고 생산적인 논의와 논쟁이 이어지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진보평론 36호에는 특집 이외에도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본질과 대중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글들이 다수 실렸다. 생활정치를 초점으로 촛불시위를 분석한 홍성태의 시평, 광우병을 진실과 거짓을 다룬 손미아의 정세글, 황진태·고민경이 쓴 지역의 개발주의 관점을 중심으로 분석한 대운하 관련 글이 있다. 그 외 라이히의 성정치 소개를 통해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데 시사점을 주는 윤수종과 현대사회의 지배원리로서의 동일성을 비판하고 있는 박종성의 일반논문, 백혈병노동자를 양산하며 나몰라하고 있는 삼성을 고발하는 공유정옥의 발언대, 브라질의 땅 없는 농업노동자의 운동을 통해 대안적인 삶과 사회를 알리는 박수정의 르포, 서평으로 백승욱과 최세진의 글이 있다. 많이 바쁜 와중에도 글을 써주신 필자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늘 촛불문화제의 한 복판을 지나가면서 엄청난 사회적 균열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의 보수시대가 좌파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좌파가 지리멸렬하여 이 기회의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후대에 오늘날의 좌파의 못난 행동에 대해 역사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좌파는 충분히 한심했다. 후대에 한심한 좌파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라도 좌파는 달라져야한다. 이 기회의 시간을 헛되이 날려 보내서는 안 된다. 지엄한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모여서 힘을 합쳐 좌파정치의 새 장을 열어가자.
 

2008-06-20 15: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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