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특집은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전략과 사회변화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좌파의 정치기획을 탐색하는 것으로 하였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전략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발전전략으로 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전략도 변화하였고 그와 함께 노동자계급구성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물론 노동운동을 비롯하여 사회운동 전반에 색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먼저 김창근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자본주의의 축적구조의 변화’에서 한국경제의 침체 원인을 경제에 대한 금융의 지배 또는 경제의 금융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금융화론’에 대해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해 나간다. 축적구조 변화와 관련하여, 맑스주의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과 실현의 문제인 이윤율저하의 문제로 설명한다고 한다. 필자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서민들이 소득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민간소비의 위축은 다시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킴으로써 장기침체를 가져왔다고 결론 내린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노동자계급뿐이라고 역설한다.
황형욱 외는 ‘신자유주의와 한국사회의 변동’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과 전개과정을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근거한 구조조정은 결국 실업의 증가와 노동의 불안정화, 일자리의 양극화라는 노동시장의 변화와 빈곤의 확대를 가져왔다. 그와 더불어 직장공동체가 개별적 경쟁관계로 대체되고 성공이데올로기가 확산되었으며, 자살의 증가, 이혼증가 등을 통한 가족해체라는 사회문화적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필자는 최근의 각종 복지정책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략의 근본적인 수정과 전환 없이는, 빈곤의 심화와 사회적 양극화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광일은 ‘신자유주의 시대, 개혁정치의 끝과 자기 안의 진보정치를 넘어’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혁정치가 좌초해 가는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진보적인 제도정치와 비제도정치의 결합을 통해,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들을 해소·극복해 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며, 진보정치세력들 내부의 조직이기주의를 넘어설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보수연합에 대항한 ‘반신자유주의 정치연대’를 ‘국제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연대와 자본에 대한 투쟁’의 원칙 위에서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한다.
고민택은 ‘좌파의 핵심적 정치기획은 당건설운동이어야 한다’에서 오늘날 좌파를 가로막고 있는 최대 장애는 ‘정치사상적, 정치노선적 공백’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계급적 좌파진영의 조직들과 그 실천은 모두 서클운동 수준에 갇혀 있고 더욱이 각개약진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중심성(또는 당파성)을 긍정하고 노동자대중의 반자본주의투쟁을 지도할 정치적 결사체(당)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파의 둘레를 벗어난 당건설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먼저 자각한 주체들이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원영수는 ‘21세기 남한좌파의 정치기획을 위한 몇 가지 전제’에서 반세계화운동의 폭발과 반전·반제투쟁의 국제적 확장, 최근 남미에서의 좌파정권의 수립 등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정치기획으로서 국내적으로는 ‘한편으로 우파중심의 상설연합체에 맞선 반자본좌파블록의 건설, 다른 한편으로 민노당의 사민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세력화를 위한 모색’이 필요하며, 이런 프로젝트의 구심으로서 계급정당 건설의 전망을 가시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 좌파운동에게는 단순한 생존논리에 입각한 잔존좌파의 수평적 결합이 아니라, 새로운 질과 형식을 갖춘 21세기 좌파의 주체형성이 요구된다고 한다.
정세란에서 황규만은 ‘극단적 투영의 인터넷 정치학, 그 너머를 위해’에서 인터넷공간은 전통적인 보수정당체제를 위협하는 참여적인 미디어이면서 동시에 반여성적이며 국가주의·민족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미디어라는 이질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전투구식토론/논쟁 중심의 주류 인터넷 정치담론이나 맹목적인 민족의식에 기대지 않고 상식과 대안적인 내용생산을 위한 공감/전이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조미영은 ‘민주화실천운동가족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벌여온 목요집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목요일 오후 2시 탑골공원 앞에서 김영삼 정부 당시인 1993년 양심수가 하나도 없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알리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목요집회, 600회를 맞이하였단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하였던 목요집회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내용은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라고 한다. 이제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현안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해결을 촉구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기에……. 김행수는 2005년 12월 9일 국회에서 직권상정되어 개정된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의의를 다룬다. 사학법 개정은 전교조를 비롯한 학생·학부모·교직원 등 교육주체의 전적인 요구였으며, 이를 통해 공교육을 바꾸고 교육의 변화를 통해 나라를 바꾸자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발언대에서 정욜은 에이즈감염인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에서 감염인, 환자들이 참여하는 에이즈 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모습을 드러내기(물론 성매매여성들처럼 얼굴을 가리고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지만…….) 시작한 감염인 당사자들의 움직임에 비감염인들이 힘을 실어주고 반동성애적 환경을 바꾸어 나가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일반논문으로는 2개의 글을 실었다. 전병권은 ‘인지자본주의의 문제설정’에서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이 가공한 지식기반경제에 대항하여 인식에서 파생된 어떤 형태가 자본축적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인지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의 결론은 생산적 노동은 더 이상 임금관계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지자본주의는 우리의 삶 전체가 자본에 종속되어 생존하도록 명령한다고 한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보장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며, 노동계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생존권보장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곽노완은 ‘21세기 󰡔자본󰡕의 철학, 공황의 에피스테몰로기’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독일과 영국에서 󰡔자본󰡕읽기가 늘고 있는 현상을 지목한다. 󰡔자본󰡕 읽기와 해석의 역사를 소상히 밝혀주면서, 그는 󰡔자본󰡕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를 제안한다. 특히 자본 일반 개념을 폐기하고 사회적 총자본의 근본적이고 지배적인 경향을 󰡔자본󰡕의 대상으로 설정해 나가고, 더욱이 공황을 신용 및 금융과 연관시켜 분석한 점은 신자유주의시대의 자본주의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맑스의 빛나는 측면이라고 강조한다.
다시읽기에서 최형묵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인내와 순종의 표상처럼 이해되어온 욥을 끊임없이 항변과 도발을 일삼는 욥으로서 다시 읽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고통의 기원에 대한 물음을 통해 인간의 삶을 확인하는 󰡔욥기󰡕의 주제는 고통 중에도 파멸에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삶이라고 한다. 그 삶은 꼭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의 노력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로서 누리는 삶을 이야기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는…….
문예마당, ‘생활의 발견’에서는 작년 가을 서울여성노동자회에서 개최한 <2005 일하는 여성들의 권리찾기 수기공모 ‘할 말 있수다’> 행사의 수기공모 글들을 몇 개 실었다. 이 글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당하는 온갖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글 속에 나타난 여성노동자들은 넋 놓고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힘을 나누어 줄 다른 여성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노동자인 자신을 깨닫고 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호에는 여러 서평을 싣는다. 신원철은 󰡔노동의 힘󰡕에 대한 서평에서, 이 책이 노동자들의 교섭력이나 투쟁을 좀더 세분된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는 정교함을 보여주며, 이것은 한국노동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과제들에 대하여 좀더 폭넓은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류성민은 󰡔무함마드를 따라서: 21세기 이슬람 다시보기󰡕에 대한 글에서 서구에 의해 왜곡된 이슬람을 다시 보려는 ‘있는 그대로 보기’를 강조한다. 김정주는 정성진의 책 󰡔마르크스와 한국경제󰡕는 오직 자본이 만들어 내는 시장적 질서에 순응하는 것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대중적 교양이 되어 버린 지금, 마르크스 경제학의 전복적인 개념들을 통해 한국경제를 분석해주는 책임을 강조한다. 이종영의 󰡔정치와 반정치󰡕에 대한 서평에서, 이정희는 지배와 권력을 일상에서 뿌리까지 끈질기게 질문하고 있는 이종영의 연구를 ‘존재적 욕망을 향한 물음의 힘’으로 묘사한다. 김원은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에 대한 서평에서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의 쟁점들을 다룬다. 그와 더불어 노동자교육과 관련하여, 작업장-가족-지역사회를 연계하여 노동자의 일상적 삶과 실천에 개입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진보평론󰡕이 발간되기 시작한 지 어언 6년이 되었고 30호에 다가가고 있는 시점에서 편집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현실은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사안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정세 속에서, 황색언론들과 애국주의로 넘쳐나는 가상공간의 폭력이 고조되고, 진보운동세력들은 자신들의 논의를 내부화하는 상황 속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금전살포와 주제공모로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학문이 사그라지는 시점에서, 진보평론이 칼날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진보평론 창간호에서부터 진행되어온 다양한 문제제기가 소통되고 횡단되어 잡종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폐되면서 횡적인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적인 대~한민국 소리에 공포를 느끼면서 말이다.
반강제(?)로 편집위원장을 맡으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2006년 3월 1일
편집위원장 윤수종